심신이 지칠 때마다 찾게 되는 건 당연히 음악이다. 그런데 아주 가끔씩 익숙하지 않은 음악이 고파질 때가 있다. 대중음악과는 상이한 영역에서 파생한 음악 말이다. 게임 음악이 바로 그렇다. 요즘 게임 음악의 수준은 속된 말로 장난이 아니다. 어떤 게임에서는 클래식 뺨칠 만한 오케스트라 연주가 흘러나오고, 어떤 게임에서는 화끈한 록 음악이 화면을 가득 수놓으며, 또 어떤 게임에서는 ‘전설’ 폴 매카트니가 참여한 노래를 들을 수 있다.
수많은 게임 음악 명곡 중에서 내가 꼽는 최고가 하나 있다. 바로 <파이널 판타지6>(1994)의 오프닝 곡인 <Terra’s Theme>다. 일단 <파이널 판타지6>는 게임 역사 전체에서도 클래식 명작으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그러나 이 게임의 더욱 위대한 성취는 그 영향력이 비단 게임 영역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 있다. 다름 아닌 게임 ‘음악’의 역사에서도 이 작품의 존재감은 압도적이다. 지금까지 발표된 사운드트랙의 대부분이 일본 유수의 오케스트라에 의해 연주되었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는 게임 음악의 스케일 확장에 결정적인 터닝포인트를 형성해줬다.
난데없이 <파이널 판타지>에 대해 열변을 토하는 이유는 거기에 나의 유년기가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게임을 할 때면 나는 영락없는 초등학생 배순탁으로 돌아간다. 노스탤지어적인 정서가 이렇게 갑자기 침입하면, 인간이라는 생물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정서의 전령사는 대개, 음악의 옷을 입고 찾아온다. 이 바이러스와도 같은 정서에 저항할 백신이나 방화벽이 설령 있다고 치자. 그런데 왠지 찾고 싶지 않은 이 기분은 대체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