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본드, 제이슨 본. 사실 이들의 직업은 공무원이다. 냉전시대는 물론 지금도 근무한다. 우리가 ‘간첩’, 스파이라고 불러서 그렇지, 자국에서는 엘리트 애국자들이다. <의형제>의 강동원이나 <7급 공무원>도 마찬가지. 정식 직급이 7급일 뿐 최고로 훈련된 비공식 외교관이다. 이처럼 동사무소(주민센터)에 근무하는 이들만 공무원이 아니다. 요즘은 특채, 별정직, 계약직 등 비정규직이나 비상근 업무도 많고 다양하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에게 “공무원은 공무원”이다. ‘철밥통’, 안정성, 비교적 쉬운 업무라는 통념이 뿌리 깊다. 최근 일부 서울대학교 학생들이 “저녁이 있는 삶”을 위해, 9급 공무원 시험에 지원한다는 뉴스가 있었다. <저녁이 있는 삶>. 한때 저항적 지식인이었던 손학규가 쓴 이 책의 제목은 우석훈의 주장대로 제목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군사 정권 시절 얘기지만 1970년대 중반에는 육사만 졸업해도 5급 공무원(사무관)으로 특채되기도 했다. 물론 지금 현상은 청년 실업이 제1 원인이다. 서울대생이 9급 공무원 취업준비생이 되자, 내외부에서 의견이 분분하다.
여유로운 삶을 즐기고 싶다는 의견에서부터, 합격하면 서울대 출신 ‘이너 서클’을 만들어 남들이 9급에서 5급까지 걸리는 기간이 보통 30년인데 25년으로 단축시키자는 ‘다짐’까지. 다른 한편에서는 서울대생은 ‘서울대 졸업자’다운 취직을 하는 것이 사회 정의라는 주장도 있다. 그들이 고졸이나 소위 비명문대생의 영역까지 ‘쳐들어오는 것’은 염치없는 처사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같은 비판이 오히려 그들의 특권 의식을 부채질한다는 의견도 있다. 그외에 “개인의 선택이다”, “대기업 합격에 자신이 없어서 그럴 것”이라는 ‘분석’도 눈에 띈다. 전직 시간강사인 내 경험에 의하면, 맨 마지막 의견이 가장 합리적으로 보인다.
취업난으로 인한 업무의 성격과 지원자의 학력 부조화는 새삼스럽지 않다. 환경미화원 모집에 석사 지원자가 넘쳐난 현실은 이미 십년 전 얘기다. 고학력자의 지나친 ‘하향’ 원서는 사회적 차원에서 걸러진다. 그러나 공무원 취업은 시험을 보는 것이므로 학벌과 무관한 개인의 준비 수준에 달려 있다. 학벌과 실력은 일치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특정 대학 출신이 어떤 분야에 취직을 하든 뉴스거리도 아니고, 개인적으로 관심도 없다.
다만, 나는 두 가지 상황이 불편했다. 9급 공무원으로 취직해 ‘업계 동문회’를 만들겠다는 발상이 놀랍다. 대학교수서부터 9급 공무원까지 서울대 공화국? 또 하나는 “저녁이 있는 삶”에 대한 오해다. 저녁이 있는 삶은 새로운 형태의 일상이다. 예를 들어, 남성이 가정주부로 사는 삶이다. 안락함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9급 공무원이라고 해서 ‘9 to 6’ 근무가 보장된 것도 아니다. 지역, 업무, 성별 등 다양한 9급 공무원에게 직접 물어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