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복사기 정성호가 올해에만 추사랑, 김영만, 양현석도 모자라 버벌진트와 최시원까지 판박이처럼 따라하자, 인터넷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당대 성대모사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그는 <SNL 코리아>의 터줏대감으로서, 여타의 코미디 프로그램이 굴곡진 시청률 그래프로 어려움을 겪는 와중에도 끊임없이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지금 당장 TV를 켜 가장 웃긴 사람이 누구일지 투표하면 베스트 3위 안에는 충분히 들 자격이 있는 개그맨. 이제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성대모사를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성대모사로 승화시키는 정성호에게 그 비법을 물었다. 그는 인터뷰 내내 20명이 넘는 연예인들의 성대모사를 라이브로 들려주었다.
-‘정성호 성대모사 레전드’란 제목의 영상이 조회수 300만건에 다다를 정도로 SNS에서 화제가 됐다. 지난 몇년간 많은 활약을 했지만 올해 가장 에너지가 넘쳐 보인다.
=<나는 가수다>를 패러디한 코미디 코너 <나도 가수다> 때 임재범 성대모사를 하면서 대중적인 호응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바로 <SNL 코리아>(이하 <SNL>)에 합류했는데 함께 출연하는 동료들과 비교해 내 연기력이 많이 부족하더라. 장진 감독도 안 되겠던지 “뭘 잘할 수 있느냐?”기에 성대모사를 하겠다고 했다. 그때부터 지속적으로 이순재, 정진영, 이승철 성대모사 등을 개발해왔고 올해 김상중과 버벌진트 등을 시도하며 여기까지 오게 됐다.
-추사랑, 김영만, 박태환, 최시원 등의 성대모사가 화제가 됐던 이유는 표정조차 똑같았기 때문이다.
=고명환씨의 권유로 표정에 입문했는데 그가 어느 날 나한테서 가발 씌우고 표정 따라하면 “게임 끝”인 캐릭터가 여럿 보인다는 거다. (웃음) 사실 굴곡이 큰 얼굴들은 흉내내기 쉽다. 예를 들어 임재범과 닮은꼴이라면 버벌진트, 로버트 드니로, 율 브리너 흉내에 도전하는 게 가능하다. 반대로 할 수 있는 사람만 가능하다는 점이 제약이 되기도 한다.
-과하게 분장을 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 매번 변신이 가능한 비법이 있나.
=요새 나를 박나래와 많이 비교하는데 나래는 특수분장을 한다. 그러니 나래의 얼굴이 없어진다. 나는 그와 달리 얼굴의 기본 형태를 유지한다. 재미는 거기서 나온다. 아베 총리나 조용필을 성대모사할 때는 입 안에 휴지를 넣어 살쪄 보이게 했다. 사실 조용필의 포인트는 어깨를 올리는 제스처다. 박태환은 약간 턱이 돌출된 형이라 구강구조를 비슷하게 따라하고 팔자주름이 생기게 찡그린 다음 귀를 가리면 앞으로 새는 소리를 낼 수 있다. (그러더니 김원효 성대모사를 한다.) “안 돼에에~” 이렇게 사람끼리 연결이 가능하다.
-성대모사하는 방법에 대해서 좀더 구체적으로 소개해준다면.
=목소리를 따는 과정을 우리는 ‘튜닝’이라 부른다. 예를 들어 임창정을 따라하겠다고 하면 말소리가 아니라 그의 노래를 100번쯤 듣는다. 그런 다음 “여보오세에에요, 나야”에서 “세에에” 부분의 발음 특징을 잡아 성대에 기억시키는 거다. 그다음 문장을 만들어 구사하려면 본래 그 사람의 말투보다 조금 과장되게 표현하는 게 중요하다. 예를 들어 한석규를 성대모사할 때 “우리~ 애가 노래한다잖아”라고 하면 안 되고 “우우!리이 애애가 노오!래애한다아잖아요~” 이렇게 강조하듯 발음을 살짝 뭉개면서 끌어줘야 똑같게 들린다. 그 사람이 안 하는 행동을 더 추가하기도 하는데 음색이 비슷한 사람끼리는 자연스레 넘나들기 쉽지만 하루에 한두번씩은 꾸준히 계속해줘야 한다.
-자전거타기처럼 한번 몸에 각인되면 잊히지 않는 것이 아닌가 보다.
=색이 바래지듯 목소리도 변한다. 근육을 안 쓰면 퇴화하듯 말이다. 김명민씨의 경우, 예전 <조선명탐정> 때와 비교해 “된다, 된다, 안심이 된다”고 노래 부르며 광고에 나올 때와는 목소리가 다르다. 이순재 선생님도 성대모사하는 사람들마다 약간 다른데 나이대별로 연구한 지점이 달라서다.
-외모모사가 불가능해 도전에 어려움을 겪은 인물도 있나.
=바로 김수미 선생님. 만약 그녀의 외모만 비슷하게 모사할 수 있다면 시너지 효과는 어마어마할 것 같다. “아이구, 무수와(무서워)”라는 표현으로 튜닝을 해놨는데 얼굴이 해결이 안 되는 거다. 허구연 해설위원도 가능한데 얼굴이 안 똑같으니까 재미가 없다.
-처음 성대모사에 도전해 성공했던 사람은 누구인가.
=서경석이었다. 원래는 서울예대에 입학했을 당시만 해도 배우가 아니라 성우가 꿈이었다. 그런데 MBC 공채시험 보면서 가짜 3개 국어를 구사하는 서경석 성대모사로 합격했다. 어릴 때에는 성우 배한성의 ‘맥가이버’를 따라하면서 놀곤 했다.
-성우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은 지금도 여전한가.
=그렇다. <뽀뽀뽀> 할 때 잠깐 성우들과 작업을 한 적이 있는데 나와는 발음과 호흡이 달라서 놀랐다. 장•단음을 굉장히 정확히 구사하고 교과서적인 말투를 내야 하는데 나는 전달력이 너무 떨어지더라. 김성주 아나운서에게 어떻게 하면 정확하게 발음할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끊임없이 연습하는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
-<SNL>의 일주일 촬영과 녹화 스케줄도 궁금하다.
=13명의 작가들이 1주일에 콩트 10개씩 아이디어를 내고 그중에서 고른다. <SNL>이 작가 사이에서도 손꼽힐 만큼 힘들다더라. 아이디어와 대본이 결정되면 작가는 배우와 연출과 함께 탈고 작업을 한다. 나는 그때부터 연구를 해야 하고 야외촬영은 수요일과 목요일 이틀 동안 꼬박 진행된다. 촬영 당일 토요일 아침이 되면 배우와 호스트가 대본을 다시 맞춘다. 그리고 아침 리허설 때 분장과 동선을 모두 맞춰보면서 코너 순서를 짠다.
-대중의 웃음 코드 변화에 누구보다 민감할 것 같다.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 것 같나.
=성대모사에서 사람들이 가장 크게 반응하는 순간은 화제의 인물을 가장 먼저 모사했을 때다. 사람들이 추사랑에 반응한 이유는 상상도 못한 대상이었으며 그게 심지어 황당할 정도로 똑같았기 때문이다. 대중이 원하는 것은 평소 생각하지 않았던 것을 뒤집어주는 것이다. 그리고 분장을 기반으로 한 코스프레 문화가 한국에서도 슬슬 본격화되고 있다. 더욱 견고해지는 시기가 올 것이다. 최근에는 사물모사에도 도전해보려고 하는데 사물을 어떻게 표현하느냐는 의문점에 웃음 포인트가 있다. 만약 겨드랑이 털을 표현한다면? 허무맹랑한 재미가 있을 거다.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을 성대모사하면서 느끼는 점도 남다를 것 같다.
=목소리를 자주 바꾸다 보니까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에서처럼 기계로 얼굴을 바꾸는 모습을 보니 동질감이 느껴지더라. 만약 영화 출연 기회가 주어진다면 살인마 역할을 꼭 해보고 싶다.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게 아니라 살기를 풍기는 살인마를 표현해보고 싶다.
-영화까지 활동 영역을 확장할 계획인가.
=<점쟁이들>의 신정원 감독이 입봉 전에 김민교와 함께 좀비가 주인공인 단편영화를 찍을 때부터 알고 지냈는데, 만날 때마다 나를 왜 안 쓰냐고 구박한다. (웃음) 신정원 특유의 영화색에 내가 조금이라도 색깔을 입힐 수 있다면 무조건 하고 싶다. 그럼 조지 루카스 감독에게 고마워해야지. 그가 지금의 나를 있게 했으니까. (웃음)
-지금껏 쌓아올린 노하우를 물려주고 싶은 주목하고 있는 후배가 있나.
=성대모사는 자기만의 노력과 싸움을 통해 얻어지는 결과이기 때문에 물려줄 수 없지만 대신 독자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것이 있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자기가 갖고 싶은 걸 끝까지 가지려고 손을 뻗어야 한다. 오타쿠에 비유하자면, 뭐든 매일 반복하면 3년 후엔 ‘내가 언제 이렇게 늘었지?’라며 놀라게 될 거다. 그다음엔 자연스레 몸에 배게 되니까 억지로 노력할 필요가 없다. 그런 오타쿠 정신으로 밀어붙이면 어떤 선을 뛰어넘는 시기가 누구에게나 분명히 온다. 설명서가 있는 게 아니라 자기 노력에 의해서 모든 게 만들어진다.
-요새 가장 큰 고민이 있다면 무엇인가.
=돈 좀 벌어야 할 텐데. (웃음) 내가 하는 일이 주로 마니아들이 좋아하는 편이라 더 많은 사람들이 좋아해줄 방법을 고민 중이다. 누군가가 지나가는 말로 “요새 왜 방송 안 해?”라고 할 때면 다른 도전을 하고 싶어진다. 몇년 후에도 만약 내가 성대모사를 가지고 인터뷰하고 있으면 문제가 있는 거다. 정말 잘할 수 있는 가면 쓴 사람, 웃고 있지만 뒤에서 피 흘리게 하는 살인마를 연마하겠다. 빠른 시일 내에 덱스터가 되어 돌아오면 다시 만나자. (웃음)
<SNL 코리아> 시즌6 13회 <서편제>편(2015년 5월9일 방영)
당대 최고의 성대모사 소리꾼 정성호가 라이벌 안윤상을 만나 경쟁에서 밀리고 좌절하지만 수제자 EXID 하니에게 한이 서린 성대모사를 물려주게 된다는 콩트다. 정성호가 성대모사를 했던 수많은 인물들은 물론, 성대모사라는 웃음 기술에 대한 개그맨들의 숨은 노력을 볼 수 있던 코너였다. “하니에게 한을 갖고 성대모사하라고 하는 말이 영화 <서편제>의 주제나 웃음을 만드는 우리의 이야기와도 잘 맞아떨어진 것 같다. 박수원 PD의 아이디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