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인문학? 언제는 “인문학이 위기”라더니 이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답은 인문학에 있다”며 온갖 수식을 붙인 인문학들이 줄을 잇는 트렌드 중 하나겠거니 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앞에 붙은 말 강호의 뜻을 살펴보면 잠시 멈칫하게 된다. 설마 했겠지만 흔히 ‘무림의 고수’들이 제 몸을 숨겨 수행의 길을 걷는다는 그 강호(江湖)가 맞기 때문이다. 저자 이지형은 사람들의 삶 주변을 겉돌기만 하는 인문학의 무력함을 탄식하며, 그 대안으로 강호인문학을 시침 뚝 떼고 권한다. 강호를 지키는 고수는 사주, 풍수 그리고 주역 셋이다. <강호인문학>은 이 셋의 복권이 진정한 위로의 등장을 예고한다는 확신하에 시작한다.
작가의 지난 책 목록을 살펴보면 그가 오랫동안 ‘강호’와 위로의 관계를 강조해왔음을 알 수 있다. ‘답답하고 어수선한 마음 달래주는 점의 위로’라는 부제가 붙은 책 <바람 부는 날이면 나는 점 보러 간다>(2011)부터 사주, 풍수, 소주에 대한 ‘살림지식총서’까지, 세간에서 미신이라 낮춰 말하는 세계에 관한 애정을 꾸준히 드러냈다. 그런 의미에서 <강호인문학>은 그 애정의 총체이자 저자 커리어를 정리하는 책이라 할 만하다. 이지형은 이 책에서 존대를 사용한다. 자신의 수업에 걸음한 이들 하나하나 존중하듯이. 대중에게는 낯선 사주, 풍수, 주역의 기본적인 개념을 짚어준다. 그래서 그 체계를 점차 2015년 대한민국의 현실에 겹쳐놓고, 자신의 오랜 믿음을 조곤조곤 설득한다. 구어체를 통한 강의는 ‘사주보는 법’, ‘64괘 이야기’ 등 문외한조차 살면서 들어봤을 법한 흥미를 북돋아 독자의 흥미를 꼭 붙든다.
<강호인문학>은 에필로그 ‘강호인문학을 모독하지 마라’로 닫는다. 강의록의 운명을 괘를 뽑아 점쳤더니 64괘 중 산수몽의 괘 “처음 점칠 때는 알려준다. 2번, 3번 치면 모독이다. 모독하면 알려주지 않는다”는 답변이 돌아왔다는 것. 그렇게 이지형 작가는 강호인문학의 위상을 올리는 게 이 책의 역할이라면, 결국 그 뜻을 계속 따르겠다는 각오를 슬쩍 내비친다. 앞으로도 변변치 않을 강호인문학의 평판에 개탄하면서도 이 또한 조용히 인정하는 의지는 꽤 묵직하게 다가온다.
진짜 답이 여기에 있다
아인슈타인의 공식을 기의 존재에 대한 증명으로 읽든, 아니면 그저 비유로 읽든 마찬가지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그걸 함부로 내쳐서는 안 됩니다.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것을 만들어냅니다. 보이는 것도 언젠가 보이지 않게 됩니다.(49쪽)
사주를 본다는 것은 그래서 천년에 걸친 수많은 이들의 삶, 그 드라마를 내 것으로 받아들이는 행위입니다. 그리고 그 드라마를 받아들이는 동안 우리는 위로를 받습니다. 모든 이의 삶에는 봄여름가을겨울의 사계절처럼 늘 좋은 일만 있는 것도, 힘들고 어려운 일만 계속 되는 것도 아니라고 사주는 말해줍니다. 사주는 그렇게 오랫동안 우리네 삶 속에서 위로를 주며 ‘사람’ 곁을 지켜왔습니다.(14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