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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 추천 도서 <해질 무렵>
문동명 사진 오계옥 2015-11-17

<해질 무렵> 황석영 지음 / 문학동네 펴냄

<바리데기>(2007)로 ‘바리데기’ 설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이후, 황석영 소설의 인물들은 대부분 과거에 살았다. 흥미로운 점은 그들은 대개 옛날 사람이었지만, 그들과 함께 황석영이라는 나이든 대가는 동시대 대중과 더 가깝게 만났다는 점이다. 작가 자신의 십대 시절을 그린 <개밥바라기별>(2008),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에서 시작해 다시 해방 시기부터 한국 현대사를 거슬러 오르며 개발시대의 치부를 고스란히 드러낸 <강남몽>(2010), 임오군란과 동학혁명 등 반동의 시대인 19세기를 거쳐온 한 이야기꾼의 이야기인 <여울물 소리>(2012)를 거치며 황석영의 문학은 그 힘을 이어나갔다.

새 소설 <해질 무렵>은 “지금-여기, 이곳은 과연 무엇인지”라는 질문을 던졌던 <낯익은 세상>(2011) 이후 오랜만에 선보이는, 현재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현재에서 과거를 끊임없이 끄집어내면서 다시 현재를 곱씹는다. 60대의 건축가 박민우는 어릴 적 살던 고향 같은 산동네를 밀고 건물을 올리며 성공한 중산층으로 살았다. 그는 문득 저무는 인생을 돌아보며 지금까지의 인생을 되짚어본다. 또 다른 주인공 정우희는 서른을 앞둔 가난한 연극연출가다. 반지하 단칸방에 살며 온갖 아르바이트에 시달리면서도 연극이라는 꿈을 좇지만 고난은 끊이지 않는다. 황석영은 “우리가 살아온 업보가 현재 판으로 펼쳐져 있다”고 말하며 두 세대가 포개진 이야기를 설명한다. 토건이라는 이데올로기로 미래를 저당잡아 자기 배를 불렸던 기득권과 그들이 헤집어놓은 자리에서 근근이 살아가는 현 세대의 공존은 모두에게 삭막할 따름이다. 박민우는 연거푸 옛 시절의 친구와 사랑을 추억하지만, <해질 무렵>은 그 안에 아름다움이 끼어들 틈을 허락하지 않는다. 소설이 끝내 절망으로 맺는 건 당연한 수순처럼 보인다. 황석영은 <해질 무렵>을 쓰면서 “당대와 겨뤄야겠다고, 당대 젊은 세대들 이야기건 무엇이건 간에 요새 벌어지는 일에 대해 써”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한국 문학의 큰 산이 펼쳐낼 ‘지금’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의 이야기

대부분 사람들이 숨가쁜 가난에서 한숨 돌리게 되었던 때인 80년대를 거치면서 이 좌절과 체념은 일상이 되었고, 작은 상처에는 굳은살이 박여버렸다. 발가락의 티눈이 계속 불편하다면 어떻게든 뽑아내야 했는데, 이제는 몸의 일부분이 되어버렸다. 어쩌다가 약간의 이질감이 양말 속에서 간신히 자각될 뿐.(112쪽)

나는 그녀가 일부러 강아지풀 따위를 화분에 심지는 않았을 거라고, 씨앗이 바람에 날려와 돋아난 거겠지, 하고 단정지으면서도 이렇게 무성해지려면 물을 줬을 텐데, 싶었다.(1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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