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영미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 중 한명이라는 명성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크리스토퍼 이셔우드의 존재감은 그리 두드러지지 않는다. 작가가 60살에 발표한 <싱글맨>(1964)이 2009년에야 한국에 소개되(어 절판되)긴 했지만, 이셔우드보다는 이를 원작 삼아 만들어진 동명의 영화를 연출한 패션디자이너 톰 포드의 이름이 더 두드러져 보였던 게 사실이다. 그리고 6년이 지난 지금 이셔우드의 대표작 <베를린이여 안녕>(1939)이 드디어 한국에 도착했다. 이 소설집은 비슷한 시기에 발표돼 ‘베를린 이야기’라는 책으로 같이 묶인 바 있는 장편소설 <노리스씨 기차를 갈아타다>(1935)와 나란히 ‘창비세계문학’ 시리즈의 일환으로 나왔다.
이셔우드는 동성애가 형사 고발의 대상이던 시대인 영국에서 태어났지만, 자신의 동성애 성향을 애써 감추지 않았다. 25살부터 35살에 이르는 시기, 그는 문우이자 연인이었던 시인 오든과 함께 조국을 떠나 유럽 전역을 떠돌았다. <베를린이여 안녕>은 (그 이름에서 예상 가능하듯) 독일에 체류할 당시의 경험을 바탕으로 집필한 중•단편 여섯편이 묶여 있다. 때문에 바이마르공화국에 나치의 그림자가 막 드리워지는 서늘한 시대적 분위기가 짙게 드러난다. 성소수자에 대한 관심과 논의가 활발했던 바이마르 말기에 쓰고 동성애자를 비롯한 수많은 소수자를 억압한 나치의 그늘을 피해 발표한 <베를린이여 안녕>에서 게이로서의 자의식은 많은 부분 모호하게 그려진 것도 사실이다. 책을 번역한 성은애 단국대 영문과 교수는 이런 방식으로써 <베를린이여 안녕>이 “수많은 ‘소수자 문학’이 단지 특정한 부류의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닌, 보편적인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다고 지적한다.
이셔우드가 비단 도시의 음울을 표현하는 데만 골몰했던 것 같진 않다. 그는 적국에 온 이방인으로서 경험한 대도시인 베를린 특유의 활기 역시 생생하게 ‘포착’(단편 <베를린 일기: 1930년 가을>의 두 번째 문단은 “나는 카메라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했다. <베를린이여 안녕>과 샐리 볼스라는 캐릭터를 빌려온 밥 포시 감독의 뮤지컬영화 <캬바레>(1972)는 그 가시적인 예라 할 만하다.
1930년대 독일의 명암을 포착하다
오토는 세련되게 미소 지으며, 그의 어깨를 할레셰스트로에서 유행하는 침팬지 자세로 구부려 웅크린 채로, 능숙하게 그녀를 앞뒤로 밀고 당겼다. … 내가 에르나를 안자 그녀가 온몸을 떠는 것이 느껴졌다. 이제 거의 깜깜해졌지만, 아무도 불을 켜자고 하지 않았다.(209쪽)
이런 아름다운 날씨에는 미소 짓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여느 때처럼, 전차가 클라이스트가를 오르내린다. 전차들, 인도 위의 사람들, 찻주전자 덮개처럼 생긴 놀렌도르프역의 돔이 묘하게 친근한 분위기다. 정상적이고 유쾌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는 과거의 무언가와 놀랍게도 닮은 분위기- 아주 잘 나온 사진처럼.
아니다. 지금도 나는 이 이야기 중 어떤 것도 실제로 일어났다고는 온전히 믿을 수가 없다….(31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