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럿이 주인공으로 페이지를 채워나가는 책. 11월 <씨네21> 북엔즈에 꽂힌 책 다섯권을 아우르는 갈래다. 리안 모리아티와 황석영은 새 소설을 통해 기존에 자신이 고수했던 방향을 틀어 다양한 군상을 스케치한다. 영국의 대문호 크리스토퍼 이셔우드가 청년기에 발표한 중•단편 연작은 청춘을 관통했던 날들의 흔적이 묻어 있다. 이지형은 자신의 인문학을 모든 페이지마다 확신에 찬 목소리로 설파한다. 편집자 스티브 트라이브는 <셜록: 크로니클>에서 2010년 이후 현재까지 공개된 시리즈의 세 시즌에 나온 거의 모든 정보를 아우르는 기개를 뽐냈다.
리안 모리아티는 평화로운 가정을 행복이라 여기던 한 주부가 충격적인 사건을 맞닥뜨리면서 급격히 팽창하는 세상을 그려 세계적인 소설가 반열에 올라섰다. 그의 근작 <커져버린 사소한 거짓말>은 전작들보다 많은 여자들을 서사에 앞세운다. 자연스럽게 사건이 품은 파격은 강해졌고 그 여파는 한껏 극단적인 결말로 향한다. 반응은 뜨거웠다. 대중은 엄청난 판매고와 그에 준하는 리뷰를 대신해 갈채를 보냈고, 미디어는 작가의 소설 중 <커져버린 사소한 거짓말>을 처음으로 영상으로 옮길 계획을 발표했다.
<베를린이여 안녕>은 우리에겐 다소 낯선 20세기 영미문학의 거장 크리스토퍼 이셔우드의 대표작이다. 스물다섯에 문학과 사랑의 동반자였던 애인과 함께 고국을 떠나 도착한 베를린에서 지낸 4년간의 경험이 곳곳에 배어 있다. 여섯편의 소설 속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1930년대 초 베를린을 살아가지만, 그들 모두에게서 이셔우드의 모습을 발견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나치즘이 창궐하기 직전 어지럽던 세상에서 철저히 이방인이자 소수자로 남았던 젊은 이셔우드를 2015년 한국에서 만날 수 있게 됐다.
등단 50주년을 지나는 동안에도 여전히 현역으로서 건장한 작품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는 황석영. 그는 신작 <해질 무렵>에서 낭만적인 제목이 무색할 만큼 끔찍한 현실의 암부를 들춰냈다. 이제 막 본격적으로 지금의 사회만을 써내려가기로 마음먹은 노년의 작가는, 스스로 “이제는 좀 살 만하다”고 위무하는 중년 박민우와 절망의 사각지대를 찾을 수 없는 청년 정우희 모두 굳은 얼굴로 살아야 하는 한국 사회를 한 줄기 빛조차 내리지 않은 채 직조했다. 이 거친 필치는 한동안 계속될 것 같다.
대망의 네 번째 시리즈 방영을 앞둔 영국 드라마 <셜록>을 낱낱이 파헤친 <셜록: 크로니클>에는 두 주역인 베네딕트 컴버배치와 마틴 프리먼뿐만 아니라 미처 이름을 외우지 못한 조연들의 필모그래피까지 정리하는 집념이 담겼다. 어디에서도 공개되지 않았던 배우들의 인터뷰는 물론이고 CG로 만들어낸 장면을 상세히 설명하고, 드라마에 비치지 않은 야외촬영장의 구석까지 넉넉한 크기의 이미지로 실렸다. <셜록: 유령신부>를 손꼽아 기다릴 셜로키언들에게 바이블이 될 책이다.
이름부터 낯선 <강호인문학>의 주인공은 (인물이 아닌) 사주, 풍수, 주역이다. 언론사 기자, 대기업 부장 등 다양한 경력을 거친 이지형은 자신이 작가로서 천착해온 분야들에 대한 애정을 담아 자신만의 인문학을 소개한다. 도인의 장광설 같은 초반을 지나 본격적으로 사주, 풍수, 주역에 대한 소상한 설명을 만난다면, 한없이 먼 얘기 같았던 세상의 이치가 가깝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