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엄마>와 <친구 엄마> 등 이른바 ‘엄마’ 시리즈의 공자관 감독을, 그쪽 세계(?)를 모르고 살아온(확인할 방법은 없다) 정지혜 기자가 만났다. 지난주 뒤늦은 여름휴가로 런던에서 애비로드를 걸으며 비틀스의 추억에 젖고, 파리의 시네마테크에서 <한여름의 판타지아>를 다시 한번 감상하며 모처럼의 여유를 만끽했던 그로서는, 자신이 진행해야 할 차주 기획 기사 소식을 히드로공항에서 문자메시지로 접하고는 차라리 <데스티네이션> 같은 일이 벌어지기를 바랐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건 인터뷰가 끝난 뒤 오랜만에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별일 없으신지 안부를 묻기도 했다는 정지혜 기자는 흥미롭고 즐거운 인터뷰 후일담을 들려주었다.
에로영화는 1980년대 한국 영화산업을 굳건히 지탱해온 장르였다. 그해 흥행 1위였던 안소영 주연 <애마부인>(1982)과 이대근 주연 <변강쇠>(1986)로 대표되는 선 굵은 시리즈의 계보는 당대 최고의 흥행영화들이었다. <산딸기> 시리즈는 3편까지 만들어졌고 <빨간 앵두> 시리즈 역시 10년 넘게 계속되며 무려 8편까지 만들어졌다. 1985년 개봉한 <어우동>은 추석 시즌에 맞붙은 <다이하드> 보다 더 많은 관객을 불러모았는데, <깊고 푸른 밤>은 그 <어우동>을 간발의 차이로 누르고 그해 흥행 1위를 기록했다.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 등장한 <매춘>도 1988년 흥행 1위 영화였다. 말하자면 당시 극장개봉 흥행 한국영화들은 거의 에로영화였다. 나이 지긋한 감독들이 ‘마군’이라 불렀던 <산딸기> 시리즈의 배우 마흥식 또한 당시 이대근, 강수연과 더불어 출연 작품 편수가 가장 많은 세 배우 중 하나였다.
이후 1988년 서울올림픽을 기점으로 VCR 문화가 확산되면서 시장은 급변한다. 1990년대 들어 극장가에서 에로영화가 사라지기 시작한 대신, 전국 3만여개에 육박하는 비디오 대여점을 중심으로 ‘한시네마타운’과 ‘유호프로덕션’이 양강 체제를 구축했다. 그러다 새로운 감각으로 무장한 ‘씨네프로’와 ‘클릭 엔터테인먼트’가 세대교체를 이뤄냈고(이 시기 등장한 감독들이 바로 봉만대, 공자관이다), 그 이후에는 잠깐의 춘추전국시대를 지나 ‘21세기 시네마’와 ‘초록미디어’와 ‘미공개’라는 3강 체제로 재편됐다(이 시기 등장한 감독이 바로 <레드 카펫>의 박범수다). 이 짧고도 굵은 전성시대를 빛내준 것은 화려한 패러디 제목들이다. <반지하의 제왕> <목표는 형부다> <박하사랑> 등은 얌전한 편이고 <헨젤과 그랬대> <싸보이지만 괜찮아> <살흰애 추억> <굵은 악마> <넣는 내 운명> <해리 포터와 아주 까만 여죄수> 같은 제목들이 비디오숍을 풍미했다.
“난 아직도 이쪽 분야(에로)는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고 봐.” 송해성 감독에 의해 영화화된 천명관 작가의 <고령화가족>에서 퇴물 감독 오인모(박해일)에게 <빨간 마누라> 연출을 제안하는 정체불명의 사채업자 박 사장(김해곤)은 그렇게 말한다. 오 감독을 유혹하기 위한 대책 없는 허세일지도 모르지만, 봉만대 감독이 말하길 “퐁당퐁당 상영이 없는 민주적 시장”인 IPTV 시장에서만큼은 틀린 얘기가 아닐지도 모른다. 공자관은 그 가능성을 보여준 감독 중 하나다. 영화 각계에서 분투하는 모든 이들을 응원한다. 얘기를 꺼낸 김에 봉만대 감독이 말한 절묘한 에로/멜로 장르 분류법을 들려주며 마무리할까 한다. “무삭제판이 보고 싶으면 에로영화고, 감독판이 보고 싶으면 멜로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