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가. 몸이 아파서 얻는 휴가. 직원 수가 200명에 육박해가는 우리 회사만 봐도 연중 전 직원이 몽땅 다 출근해 있기란 쉽지 않은 노릇이다. 어디가 아플까. 물어보면 병명 한번 가지가지다. 허리가 아프대요. 목 디스크래요. 엄지발톱이 뽑혔대요. 며칠째 못 자고 있대요. 장염이래요. 이명증이래요. 대장에 용종이 생겼대요. 안과에 다녀온대요. 그런데 참 특이한 건 연차가 보통 10년이 넘은 직원들은 웬만해서 아프지 않고 한 2년이나 3년쯤 되는 직원들의 병가 횟수가 가장 빈번하다는 사실이다. 경력이 좀 되었다고, 후배들의 육체적, 심리적 고통을 의심쩍어해서 이 얘기를 꺼내는 것이 아니다. 나 역시 그런 시절을 같은 마음으로 경험하고 겪어왔기 때문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말이 한때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지만, 직장 초년병 시절의 나는 일상이 환자였던 것 같다. 쓰고 싶은데 벌리는 돈은 없고, 놀고 싶은데 나이 먹어감이 두렵고, 어쩌다 일은 하게 되었지만 그 미래가 너무 빤하고, 그런 만큼 막막해서 살기 싫어지는 하루하루가 심장을 압박해오곤 했던 것이다. 마음의 병은 우리의 몸을 쉽게 무너뜨린다. 우리는 누웠다 일어나기를 수차례 반복하면서 달궈진 숯불처럼 뜨거웠던 마음의 혈기에 약으로 분무를 해가며 겨울 절벽의 돌들처럼 차갑게 늙어가는 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보통의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이 땅에서 매일같이 벌어지고 있다. 나는 텔레비전 뉴스를 보지 않고 신문을 사지 않은 지 꽤 오래되었다. 무식함을 자랑하는 게 아니다. 그런 나를 스스로 비난하지만은 않는 것은 사람의 탈을 쓰고 어찌 저럴까 하는 사람들에 의해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태들에 꼴도 보기 싫은 마음이 너무 커져버려서다. 나도 안다. 내가 얼마나 비겁한 사십대인지. 후배들을 위해 이 사회의 정의와 선의를 위해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뒤로 물러나 팔짱을 낀 채 말만 씨불이는 내가 얼마나 한심한 선배인지를. 국정화 교과서 반대 시위로 주말에 10만명이 운집할 거란 뉴스가 일찌감치 보도된다. 그 10만명은 어디에 기본을 두고 계산한 숫자일까. 경찰 동원력이 최고에 이를 거라는 뉴스도 함께 보도된다. 이 시국에 분노는 하지만 이 시국에 함께 시위 대열에 뛰어들지 않는 이들의 대부분은, 우리가 힘을 합한다고 무언가 바뀔까 하는 패배주의에 만연한 사고가 분명 팽배해져 있기도 해서일 것이다. 그런데 역사를 거슬러보면 합해진 목소리가 크고 우렁차며 보다 간절할 때 우리는 우리의 뜻한 바를 이뤄왔던 것 또한 사실 아닌가.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 그런데 피해봤자 냄새는 점점 더 심해지고 부패는 더 더럽게 진행될 것이니 방법은 하나, 누군가는 빗자루를 들고 누군가는 삽을 들고 여기저기 곳곳에 무더기로 쌓여 있는 똥을 치워야 할 것이다. 후배들에게는 보다 가벼운 빗자루를 쥐어주고 선배들은 보다 무거운 삽을 들자. 일단 아프지 말자. 아프지 않아야 똥도 안 밟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