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딕스 부부는 서로에게 거침없는 애정을 표하며, 현대사회의 여덟 번째 불가사의인 행복한 결혼 생활을 이루는 데 성공한 것처럼 보였다.” 이 문장은 로맨스 소설에 등장했더라면 더 좋았을지도 모르겠다. 하필이면 미스터리 소설 <독 초콜릿 사건>의 도입부에 슬쩍 끼어든 이 문장은 곧 파국으로 이어진다. 벤딕스씨는 사교클럽에서 만난 지인으로부터 우연히 초콜릿 한 상자를 받게 된다. 그리고 집으로 가 아내와 나눠먹는데, 벤딕스씨는 쓰러지고 더 많은 초콜릿을 먹은 벤딕스 부인은 사망한다. 이 사건을 두고 범죄 연구회의 회원들이 각기 수사를 통해 진범을 추리하기로 한다. <독 초콜릿 사건>은 회원들의 추리를 하나씩 보여주며 진실을 향해 다가간다.
<독 초콜릿 사건>의 재미는 범죄 연구회의 회원들이 각기 최선을 다한 추리를 보여주며, 그때까지 밝혀진 바로는 진실에 가장 가까운 설명을 들려준다는 데 있다. 하지만 다음 회원은 그전의 의견이 왜 틀렸는지를 설명하고 새로운 추리를 보여준다. 이 사건을 어떤 관점으로 보는지는 회원마다의 성격에 따라 차이가 있어서 비슷한 과거의 사건을 끄집어내는 것도 저마다 다르다. 사건은 하나지만 여러 해결책이 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진실은 하나다. 아마추어 탐정들의 추리 과정은 ‘추리소설이 어떻게 탄생하는가’의 과정 그 자체가 된다. 당신이 추리소설을 쓰고자 한다면 <독 초콜릿 사건> 속 범죄 연구회 회원들처럼 여러 관점에서 사건을 수사하고 증명하고 쐐기를 박아야 한다. 맨 마지막으로 추리를 선보이는 치터윅이 기존 추리를 정리해 제시하는 표는, 모든 미스터리물이 세상에 나오기 전에 거쳐야 하는 필수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나의 사건을 두고도 다양한 추측은 가능하다. 하지만 그 모든 가능성을 두루 살피고 나서 남는 결론이 단 하나뿐이라면 그것이 답이 될 것이다. 이 소설에는 반전도 있는데, 가장 완벽한 추리가 등장했다고 생각한 바로 다음 순간 그 추리가 완벽하게 뒤집히면서 진범이 드러나는 대목은 어찌나 우아하게 연출되었는지 아름답다는 생각마저 들 지경이다.
“책 속에서 작가는 발견되기를 바라는 단서들의 수를 명확히 정해놓고 탐정으로 하여금 발견하도록 하면 족할 뿐, 다른 일은 신경쓸 필요가 없습니다. 실제 사건에서는 그런 식으로 진행되지 않는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지요.” 작가 앤서니 버클리는 범죄 연구회 회원인 추리소설가 브래들리의 입을 빌려 설명한다. 신탁이라도 받은 양(실제로 주인공은 작가의 신탁을 받아 움직이기 마련이긴 하지만) 하나의 길만을 제시하지 않고, 여러 탐정(들)이 독자와 더불어, 함께 헤매게 만드는 것. <독 초콜릿 사건>의 재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