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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히 빠져드는 불안감 <더 기프트>

남부러울 것 없던 사이먼(제이슨 베이트먼)과 로빈(레베카 홀) 부부는 유산으로 아이를 잃은 후 평온을 되찾기 위해 조용한 교외로 이사하기로 결심한다. 이사한 첫날, 부부는 우연히 남편 사이먼의 고등학교 동창 고든(조엘 에저턴)을 만나 짧은 인사를 나누게 된다. 그다지 반가워하지 않는 사이먼의 태도와 달리 고든은 부부의 집에 선물을 보내거나 로빈이 혼자 지내는 낮 시간에 집에 찾아와 집안일을 도와주기도 한다. 하지만 로빈은 어쩐지 고든의 호의가 불안하고 의심스럽기만 하다.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시달리던 로빈은 직접 고든을 조사하기 시작하고, 그 끝에서 예상치 못한 이야기와 만나게 된다.

완벽해 보이는 부부, 새롭게 이주한 조용한 동네, 불쑥 등장하는 낯선 인물, 숨겨진 과거. 이 네개의 조건만으로도 어렵지 않게 서너편 이상의 영화들이 떠오른다. 하지만 호기롭게 <더 기프트>는 한번 더 이 네장의 ‘카드’를 받아든다. 대신 스릴러 장르의 기본 규칙을 뒤틀어 긴장을 만들어나가지 않고, 극의 리듬감을 세심하게 조절함으로써 관객이 로빈의 불안에 서서히 빠져들도록 만든다. 이때 로빈의 불안은 정체를 알 수 없는 고든에게서 출발해 믿고 의지하던 남편 사이먼에게로 옮겨간다. 그러나 유산의 충격으로 몸도 마음도 약할 대로 약해진 로빈은 자신의 이런 의심에 확신을 갖지 못한다. 덕분에 관객도 영화 마지막까지 로빈의 불안을 함께 경험하며 긴장을 내려놓을 수 없게 된다. “누구한테 속았다는 생각이 들면 그 사람이 하는 말은 다 거짓말 같아”라는 로빈의 대사는 고스란히 영화를 보는 관객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흥미롭게도 영화는 영화 표면 아래에 사이먼과 로빈 부부가 유산을 경험하고 다시 아기를 갖게 되는 과정을 함께 녹여넣음으로써, 고든을 대면한 로빈의 불안을 새롭게 태어날 아기를 맞이할 엄마의 불안과 공명시켜 기묘한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조엘 에저턴 감독이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로 로만 폴란스키의 <악마의 씨>(1968)를 꼽았다는 사실이 어렵지 않게 이해되는 지점이다. 고든 역으로 직접 출연까지 한 감독은 <엑소더스: 신들과 왕들>(2014), <위대한 개츠비>(2013)에 출연한 배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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