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호선 안국역 1번 출구로 나와 풍문여고를 돌아 높은 담장과 느티나무 그늘을 따라 정독도서관까지 하늘하늘 걸어가다보면, 왼쪽에 아트선재센터가 나온다. 그 건물 뒤편께에 살았다는 서태지는 <소격동>을 통해 80년대 기무사와 녹화사업의 기억을 더듬었다지만, 98년 아트선재센터가 개관하면서부터 지금까지 17년 동안 꾸준히 그 길을 걸었던 나에게 소격동은 중요한 독립예술영화관이 있는 동네다. 희한하게 아트선재센터에 볼일이 있을 땐 항상 10여분 일찍 도착한다. 기어이 근처 구멍가게에서 싸구려 캔커피를 사들고 담배 한대를 피워야 직성이 풀리는 알다가도 모를 속내. 어쩌면 점점 낯설게 변해가는 소격동 풍경을 바라보며, 한때 그곳에 범람하던 영화적 욕망, 극장 바깥으로 쏟아져나와 왁자지껄 수다를 떨던 그 많은 사람들의 흔적을 주워섬기는 건지도 모르겠다.
98년 퀴어영화제가 한국에서 처음으로 열린 곳이 바로 그곳이다. 전국의 선남선녀 변태들이 소식을 듣고 득달같이 몰려들었다. 99년엔 그간 이곳저곳 보따리 장사를 하던 인디포럼영화제가 둥지를 틀었다. 만원사례 속에서 여봐란듯이 커다란 독립영화제 배너가 깃발처럼 소격동 하늘을 휘저었다. 바로 뒤이어 서울독립영화제도 개최됐다. 2002년에는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가 발족되고, 그곳에 ‘서울아트시네마’를 개관했다. 마침내 고전영화를 필름으로 상영하는 시네마테크 전용관의 탄생. 영화적 욕구는 넘쳐났으나 상영공간이 여의치 않던 시절, 그 극장은 온갖 영화들과 사람들이 교차하는 중앙역이나 진배없었다. 명실상부 90년대 시네필들의 메카였다.
2005년 서울아트시네마가 낙원동으로 이관하고, 영화제들이 분가하듯 다른 곳으로 모두 흩어지고 나서도 명맥은 유지됐다. 배급사 진진이 그곳에 독립예술영화관 ‘씨네코드 선재’를 열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소격동에 가는 유일한 이유다. 하지만 오늘 갑자기 들려온 비보. 씨네코드 선재가 문을 닫는단다. 아트선재센터의 리모델링과 계약 만료 때문이란다. 설령 리모델링 후 다시 그곳에 극장이 열린다 해도 씨네코드 선재의 폐관으로 소격동 영화 역사는 일단 막을 내린 것이리라. 군부독재정권하에서 억눌렸던 문화적 욕망이 구기무사 건물 바로 코앞에서 분출되었던 그 기묘한 역설의 역사, 그 찬란했던 영화적 체험과 공유의 순간들이 난데없이 끝나버린 것이다.
신산하다. 카페와 갤러리에 잠식되고 대기업의 한옥 투자로 부동산 가격이 치솟는 소격동의 낯선 모습만큼이나 맵고 시리다. 과거 독재정권의 유령들과 자본 독점 사이에 끼어 바둥거리고 있는 현재의 독립예술영화 처지를 상징하고 있는 것 같아, 마냥 황망하다. 안국역 1번 출구와 돌담길이 돌연 아득해진다. 소격동에 가야 할 이유가 사라져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