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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저런 스승이 있으면 좋겠다”
사진 최성열김소희(영화평론가) 2015-11-03

<앙뚜> 문창용 감독

“그들의 눈빛을 잊을 수 없었다.” 오랫동안 한곳에 살다보면 사람의 눈빛이 장소의 깊이를 닮게 되는 것일까. 문창용 감독은 라다크에서 만난 노승과 동자승과의 만남을 이렇게 기억한다. 누구라도 마음을 빼앗길 수밖에 없는 풍광 속에서, 정작 감독의 마음을 흔들어놓은 건 사람이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100여편의 방송 다큐멘터리 제작 경험이 있는 문창용 감독은 방송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해 방문한 라다크에서 노승 우르갼과 다섯살의 동자승 앙뚜를 처음 만났다. “노승과 꼬마승이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과 그들이 보여주는 관계가 너무 사랑스러웠다”는 그는 언젠가 꼭 다시 오겠다고 결심한다.

드라마틱한 일이 펼쳐진 건 그다음이었다. 라다크를 다시 찾았을 때 “앙뚜가 린포체(환생한 고승)로 지명되면서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뒤바뀌어 있었”던 것이다. 린포체는 티베트 불교에서 거의 신처럼 떠받들어지는 존재다. 문제는 하나의 하늘에 두개의 태양이 존재할 수 없듯이 한 마을에 두명의 린포체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들이 기거하던 라다크 마을에는 이미 린포체가 있었고, 앙뚜는 티베트로 떠나야 했다.” 그러나 그마저도 티베트에서 제자들이 모시러 오지 않아 갈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아무도 돌볼 사람이 없자 우르갼이 앙뚜를 모시듯이 돌봐주고 있었다. 절에서도 쫓겨나 조그만 암자에서 힘들게 생활하는 모습”이 감독에게 감정적인 울림을 줬다.

해발 4000m의 숨쉬기조차 힘든 척박한 땅이지만, 매너리즘에 빠져 있던 그에게는 유일하게 숨을 터주는 공간이 라다크였다. “<환생을 찾아서>(2008)처럼 린포체에 관한 영화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버림받은 린포체와 노승의 사랑에 대한 영화는 들어보지 못했다”며 작업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친다. 한국에 와서 방송 다큐멘터리를 찍으면서 제작비를 충당하고 다시 라다크로 떠나는 식으로 작업을 계속한 것이 벌써 6년째다. 짧게 반복되는 방송 다큐멘터리에 염증을 느껴 “긴 호흡의 작품을 찍고 싶다”는 생각을 해온 그에게 라다크는 어디보다 비옥한 땅이었지만, “오랫동안 촬영하다 보니 가끔 이들과 나 사이의 간격이 없어지는 혼란스러움도 느꼈다”. 감독의 혼란은 앙뚜가 환생한 고승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의 문제에서도 불거졌다. “그가 린포체라는 게 거짓말로 밝혀지면 어떡할 거냐고 묻는 사람도 있다. 앙뚜가 진짜 린포체인지 아닌지는 나도 알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이들을 종교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다”라며 거리를 둔다. 오리엔탈리즘으로 소비될 여지가 있지 않냐는 우려에 그 역시 서양 다큐멘터리 등에서 “린포체를 신처럼 대단한 존재로 부각하며 신비화하거나 반대로 그들의 종교를 의심하고 미개화하는 것”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그의 전략은 일상적인 모습도 가감 없이 드러내는 것이다. “앙뚜의 외모가 상당히 귀엽고 개구쟁이 같아서 <해피선데이-슈퍼맨이 돌아왔다> 같은 TV 예능 프로그램에 맞먹는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감독이 둘의 관계를 보며 가장 많이 생각한 것은 “나도 저런 스승이 있으면 좋겠다”였다. 이것은 그대로 이 작품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화두이기도 하다. “둘의 관계를 보면 서로가 서로에게 엄청난 위안을 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에게 진짜 스승은 누굴까를 생각해보면 점점 스승을 잃어가는 느낌이 든다.” 앙뚜는 올겨울 티베트 국경선 지역에서 홀로서기를 할 생각이다. 문 감독은 이 과정에 동행할 예정이다. 계획대로라면 무더위가 한창일 내년 8월 즈음엔 관객을 만날 채비를 끝낼 예정이다.

<앙뚜>의 결정적 순간

꼽을 수 없다. 400시간이 훨씬 넘는 촬영본 중에 하나만 꼽으라는 것은 열 손가락 중에 아프지 않은 손가락을 고르라는 것과 같다. 미리 예단해서 말씀드리고 싶지 않은 것도 있다. 보는 분이 판단해주셨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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