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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 × cross] “과학을 인문•사회학적으로 통역해주는 게 내 위치”
이주현 사진 오계옥 2015-11-02

SF2015 준비하는 ‘과학과 사람들’ 대표 원종우

“우리 세대는 과학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다들 잊고 산다. 입시공부해야 해서, 취직해야 해서, 가족들 건사하기 바빠서…. 별이나 우주, 로봇에 대한 꿈이 있었던 이들이 팟캐스트를 들으며 과거의 기억을 되살릴 수 있었으면 했다.” ‘과학과 사람들’의 원종우 대표는 팟캐스트 ‘파토의 과학하고 앉아있네’의 진행자 파토로 더 유명하다. 과거의 <딴지일보> 시절을 기억한다면 음악과 역사와 과학에 대한 흥미로운 글을 썼던 필자 파토로 추억할지 수도 있겠다. 2012년엔 역사서 <조금은 삐딱한 세계사: 유럽편>을 펴내더니 2014년엔 <태양계 연대기>를 출간해 과학부문 베스트셀러에 올려놓았고, 팟캐스트 시작 이후엔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3년째 SF2015의 행사에 참여해온 원종우 대표를 축제 개막을 일주일 앞두고 만났다.

-SF2015의 주제는 ‘가상과 현실 사이’다. 가상현실(VR, Virtual Reality) 제품의 상용화가 눈앞으로 다가온 현재 꽤 시의적절한 주제라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는 30년 전부터 좋아했던 주제다. 가상현실이라는 표현도 없을 때였는데, 우리의 감각이 차단되면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까 하는 문제라든지, 감각과 실체에 관한 것들에 관심이 있었다. 언젠가 한번 얘기해보고 싶은 주제였는데 마침 시기적으로 잘 맞아 명분이 생겼다. 플레이스테이션4 전용 고글과 오큘러스 리프트 상용화 버전이 내년에 출시되는데, 가상현실을 주제로 한 전시를 하려면 올해가 마지막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술적 부분뿐만 아니라, 가상현실이 세상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지 인문•사회학적 얘기로까지 뻗어나갈 수 있었으면 한다.

-가상현실의 인문•사회학적 함의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

=고글이든, 장갑이든, VR 장비를 통해 할 수 있는 것들이 점차 늘어날 것이다. 가상현실을 통해 스포츠나 레저 활동을 즐기게 되면 관련 산업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가상현실 속에서 안전하게 알프스에서 스키를 탄다거나 지구 반대편으로 여행을 다녀올 수 있다면, 누가 비싼 돈 들여 알프스에 가고 남미에 가겠나. 그리고 가상현실의 궁극은 매트릭스(일상이 돼버린 가상의 공간)다. 미국방위고등연구계획국인 다르파(DARPA)에서 현재 뇌에 직접 연결하는 가상현실 칩 연구를 시작했다. 고글이나 장갑 같은 장비를 통해서가 아니라 감각계, 신경계에 직접 신호를 보내는 장치가 개발되고 있다. 점점 현실과 가상세계의 경계가 불분명해질 테고, 사람들은 현실에서 많은 것을 하지 않으려고 할 거다. 보통 다르파가 연구에 뛰어들면 10~15년 내 기술 상용화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지금의 얘기들이 그리 먼 미래의 일이 아닐 수도 있다.

-상상하니 무서운 이야기다.

=극단적으로 얘기하면, 세상을 바꾸는 건 로봇도, 그 무엇도 아니고 가상현실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가상현실의 엄청난 파괴력을 사람들이 크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이번 전시에 ‘멀티 리얼리티’라는 표현을 만들어 사용했는데, 가상현실 세계는 여러 형태로 많이 존재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현실이 가상현실 세계의 하나가 되는 순간, 멀티 리얼리티가 가능한 순간이 오게 된다는 뜻이다.

-SF2015 시네마&토크 프로그램에선, <인셉션> <매트릭스> <엣지 오브 투모로우> 등 가상현실과 연결고리가 있는 SF영화들을 상영한다. 혹시 이중 개인적으로 과학적 호기심을 불러일으킨 영화가 있다면.

=과학적 호기심을 자극한 건 <매트릭스>였지만, 개인적으로 최고의 영화는 <인셉션>이다. <메멘토>에서도 그랬듯,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인셉션>에서 혼돈이 만들어내는 긴장감을 최고치로 끌어내는 연출을 선보였다. <인셉션> 상영 뒤엔 정재승 교수와의 토크 시간이 마련돼 있다. 현대 뇌과학은 꿈에 얼마나 접근했는지, 꿈을 읽거나 주입하는 게 가능한지 등의 주제로 이야기를 나눌 예정이다.

-2013년, 과학 팟캐스트 ‘파토의 과학하고 앉아있네’를 시작했다. 어느새 과학 전도사라 불리기도하는데, 과학 팟캐스트를 시작한 이유가 궁금하다.

=계획을 세워두고 살지 않는다. (웃음) 오히려 계획이 나를 옭아맬 때가 더 많다고 여긴다. 예전에 했던 일들도 모두 계획하고 시작한 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과학쪽에 발을 들이게 된 것도, <딴지일보>에 연재했던 글을 묶어 <태양계 연대기>라는 책을 내면서였다. 책을 재밌게 봐준 과학 종사자들이 ‘이런 강의가 있는데 참여해서 얘기 좀 들려달라’고 하면서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게 됐다. 그러다 ‘과학과 사람들’이란 회사를 차렸다. 회사를 위한 리서치를 하며 뒹굴거리는데, 팟캐스트는 돈이 안 든다는 생각에 일단 시작했다. 1편 만들고 반응이 나쁘면 접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제법 반응을 얻기 시작했다.

-과학 비전공자가 과학을 다루는 게 신선하게 받아들여진 측면도 있다.

=트랜스레이터, 즉 과학을 인문•사회학적으로 풀어 통역을 해주는 게 내 위치라고 생각한다. 과학자들은 기본적으로 과학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다. 과학자들 입장에서 쉽게 이야기한다 해도 일반인들의 눈높이보다 높을 수밖에 없다. 나는 내가 아는 지식을 최대한 동원해 과학을 어떻게든 풀어서 설명하려 한다. 100% 정확하지 않아도 괜찮다. 핵심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전달하고자 하는 것의 70%만 정확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하나도 전달되지 않는 것보단 나으니까.

-과학에 대한 최초의 관심은 언제부터 시작됐나.

=초등학교 3, 4학년 때쯤? 그 당시 이상하게 우리 동네 아이들이 경쟁하듯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읽었다. 이만큼 두꺼운 <코스모스>를 끼고 다니며 읽고 그랬다. (웃음) <코스모스>가 다루고 있는 거대한 우주라는 세계, 그리고 그 세계를 다루는 방식이 좋았던 것 같다. 그런데 과학자가 될 성향은 아니었던 게, 수에 약했다. 대신 음모론과 예언쪽으로 관심이 바뀌었는데, 어린 마음에 과학의 신비와 노스트라다무스의 신비가 비슷한 건 줄 알았다. (웃음)

-‘과학과 사람들’ 홈페이지에 대문엔 ‘No fun, no gain. seriously’(즐거워야 모든 게 가능하다)라는 문장이 적혀 있다. ‘과학과 사람들’의 지향점이기도 하겠지만 대표님의 인생 모토가 아닐까 싶은데.

=나이 들어 얻은 깨달음이다. 원래는 굉장히 진지한 사람이었다. 20대 땐 지금보다 훨씬 내면적으로 늙은 사람이었다. 보통 사람들은 편하고 자유롭고 즐거울 때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고 창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펀’(fun)이란 것이 단순히 웃기고 재미난 것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신기하고 놀라운 감정 역시 펀일 수 있다. 중요한 건 감성이다. 사람들의 감정이 동하게 만들어야, 그 재미의 줄을 붙잡고 와서 지식을 얻어간다고 생각한다.

-20대 땐 록 뮤지션으로, 음악평론가로 활동했다. 영국 런던의 ICMP에서 기타 유학까지 했는데, 음악으로 끝을 보고 싶은 마음은 없었나.

=솔직히 음악을 못한다. (웃음) 오랜 세월이 지나고 나니 스스로 인정하게 되더라. 그런데 아직도 나는 록 덕후다. 영국에 유학갈 땐 두 가지 생각을 했다. 음악을 최고로 잘한다는 사람들은 어떤 이들일까, 내가 한번 겪어보겠다. 그리고 혹시라도 실력이 된다면 거기서 승부를 겨뤄보리라. (웃음) 누구라도 기회가 된다면 외국에 나가서 세계 최고가 뭔지 경험해봤으면 좋겠다. 세상엔 말도 안 되는 천재들이 즐비하다. 어쨌든 나의 유학은 음악을 포기하도록 방점을 찍게 했다. 자부심은 원없이 열심히 공부했다는 거고, 자괴감은 열심히 했는데도 안 된다는 거였다. (웃음)

-음악, 철학, 역사, 과학까지 다방면에 박식한 전형적 르네상스형 인간 같다. 어려서부터 우리는 한우물을 파야 한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데, 여러 우물을 파서 성공한 경우다.

=성공한 걸까, 설마. (웃음) 무언가가 되고 싶다거나 이루고 싶다는 생각을 여태 해본 적이 없다. 심지어 행복해지고 싶다는 생각도 해본 적이 없다. 행복이 뭔지도 모르겠고, 행복이 뭔지 아는 사람도 없는 것 같고. 어려서부터 그저 비밀이 알고 싶었다. 내가 존재한다는 것의 비밀은 뭐고 세상의 비밀은 뭔지. 그 비밀이 알고 싶어서, 그 비밀을 풀 수 있는 방향으로 어디든 향했던 것 같다. 그래서 여기저기서 조금씩 깔짝거렸을 뿐 성공한 건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그게 내 목표와는 부합한다. 포괄적으로 배움을 넓혀가면서 비밀의 그림을 찾고 싶다.

-그런데 정말 되고 싶은 게 하나도 없었나.

=가끔 록 스타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은 했다. (웃음)

‘가상과 현실 사이’, 과학축제 SF2015

올해로 6회를 맞은 과학축제 SF2015가 10월27일~11월1일 과천국립과학관에서 열린다. 올해의 주제는 ‘가상과 현실 사이’. SF 시네마&토크 프로그램에선 가상현실을 다룬 SF영화들을 상영하고 과학자들의 친절한 해설을 들을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다. <인셉션> <썸머워즈> <엣지 오브 투모로우> <픽셀> <빅 히어로> <매트릭스> 등이 상영된다. 석굴암 VR 체험 등이 준비된 전시 및 체험 프로그램은 10월16일부터 진행 중이다. 10월30일과 31일에는 ‘가상현실 기술의 진화와 미래’, ‘드론, 그 무한한 미래의 가능성’ 등의 주제로 SF포럼도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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