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션>에는 책 <마션>에 없는 장면이 몇 있다. 에필로그라고 볼 수 있는 장면들이 특히 그렇다. 내게 가장 깊게 남은 장면은 바로 마크 와트니(맷 데이먼)의 시간이 새로 1일부터 흐르는 엔딩이었다. 이상한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리들리 스콧은 그 장면을 위해 이 영화를 찍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우리의 삶은 일렬로 길게 늘어선 시간축을 기차 타고 이동하듯 일직선으로 흐르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물론 늙어가는 과정에 한해서라면 그 한결같은 일직선상에 우리는 놓여 있다- 즉, 우리는 결코 어제보다 젊어지지 않을 것이다). 경험은 시간을 분절한다. 우리에게는 수없는 ‘첫날’이 있다. 에필로그의 장면들. 마르티네즈는 다시 화성탐사선에 올랐다. 두 번째 여정의 첫날. 조한슨과 베크는 아이를 낳았다. 그들은 아이와 함께 수없는 처음을 맞이하리라. 어떤 경험이든, 우리를 이전과는 다르게 바꾸어버리고, 그리고 이후의 삶은 우리를 수많은 ‘처음’으로 데리고 간다. 그것을 ‘처음’이라고 부를지, 비슷하고 연속적인 반복의 하나라고 생각할지는 선택하기 나름이다.
책 <마션>에는 영화 <마션>이 누락한 부분들이 많다. 아레스 3탐사대가 화성으로 돌아가 마크 와트니를 구출하기로 결정한 뒤 대원들이 가족과 영상통화를 하는 장면 중 조한슨과 그녀의 아버지의 대화도 누락되었다. 아버지는 동료를 구조하는 과정에서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불안해한다. 조한슨은 “엄마한테 저는 죽지 않을 거라고 전해주세요”라고 딱 잘라 말한다. 어떻게 자신하느냐 묻자 그녀는 답한다. “제가 살아남기로 했어요. 제가 나이가 제일 어리거든요. 살아 돌아가는 데 필요한 기술도 있고요.” 팀원들끼리 만일의 경우 한명만 살아야 한다면 그게 누구여야 하는지에 대해서 논의가 끝났다는 것이다. 나사에서는 모르지만 “저만 빼고 다 죽을 거예요. 모두 약을 먹고 죽기로 했어요. 식량을 축내면 안 되니까 곧바로 말예요.” 하지만 보급선 계획이 실패할 경우 남은 식량은 그녀 혼자 먹기에도 빠듯하다. 그럼 어떻게 버틸까. “남은 식량 말고 다른 것도 먹어야죠. 엄마에게는 남은 식량으로 버틸 수 있다고 해주세요. 아셨죠?”
누구나 자기 경험에 비추어 세상을 바라보고 이야기를 해석한다. 조증에 가까울 정도로 낙천적이고 밝아 보이는 <마션>을 읽고 영화를 보면서, 이상하게도 나는 아무도 죽지 않은 이 모험담에 드리운 죽음을 자꾸 읽고 있었다. 이 안온한 이야기의 우주에서는 아무도 죽지 않았지만, 모두는 결국 죽을 것이다. 하지만 살아 있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을 지켜보고 그를 응원하는 것만으로도 약간은, 지금 살아 있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고야 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