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조선인들의 이야기는 이제 더이상 낯설지 않다. 그런데 낯설지 않다고 무언가 변한 것도, 그들을 더 많이 이해하게 된 것도 아니다. <울보 권투부>의 이일하 감독은 이런 우리를 다시 한번 환기시킨다.
재일조선인 학교인 ‘도쿄조선중고급학교’(도쿄조고)의 권투부 학생들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만든 <울보 권투부>는 사실상 김명준 감독의 <우리학교>(2006)와 지난해 개봉했던 박사유, 박돈사 감독의 <60만번의 트라이>의 연장선에 놓여 있다. 이 두편의 영화가 그러했듯 <울보 권투부> 역시 재일조선인이라는 정체성 때문에 일본 사회에서 차별받는 아이들의 이야기가 중심을 이룬다. 도쿄조고 권투부 ‘소조’(동아리) 아이들은 일본 전국 조선학교 권투부들이 모두 참여하는 중앙체육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매일 훈련에 땀을 흘린다. 프로복서가 되고 싶은 아이도 있지만 대부분 아이들의 꿈은 복싱과는 무관하다. 그들은 졸업 후 치즈를 만드는 장인이 되거나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가게를 운영하고, 곤충박사가 되고 싶어 한다. 아이들을 지도하는 권투부 교사는 남들을 이길 만큼 강해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비겁해지지 않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하지만 아이들은 힘든 훈련 끝에, 경기가 끝나고 링에서 내려온 허탈감에, 더 잘하지 못한 후회 때문에 자꾸만 울음을 터뜨린다.
영화는 대부분의 시간을 도쿄조고의 권투부 학생들의 대회 출전을 위한 훈련 과정과 인터뷰에 할애하지만, 교문 밖 현실에 대해서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우경화되는 일본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혐한 운동과 재일조선인과 조선인 학교에 대한 차별의 문제 등 묵직한 논제들을 끊임없이 영화 안으로 끌어들인다. 권투부 아이들의 훈련 과정과 학교 밖 현실의 문제들이 교차되면서 영화는 아이들이 링 위에서 흘린 땀과 눈물은 졸업 후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냉혹한 현실의 시작일 뿐이라고 아프게 말한다. 하지만 십대 아이들 특유의 에너지와 아이들 한명 한명의 소소하고 친근한 에피소드로 영화의 무게감을 잘 조절해낸 것은 영화의 큰 장점 중 하나이다. 무엇보다 영화 전체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기운은 참 오랜만에 느껴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