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쇄살인사건으로 소란스러운 경기 동부와 인접한 강원도의 작은 마을 ‘아치아라’. 십년간 범죄 없는 마을이었던 이곳에서 여성의 백골이 발견된다. “그 여자도 당했대요? 당했죠? 그죠?” 폴리스라인 너머로 탐욕스러운 호기심을 감추지 않는 동네주민의 말은 그러니까, 여자가 강간을 당했을 거라는 확신이다. 소름이 끼쳤다. SBS 드라마 <마을-아치아라의 비밀>은 폐쇄된 공동체의 어두운 비밀과 위선을 파헤치는 이야기들이 취하는 잠깐의 푸근함과 순박함조차 가장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시골 마을의 외지인 여교사. 지역 유지를 중심으로 한 구성원들의 범죄. 비밀을 캐는 경찰관. 귀신을 보는 아이처럼 초자연적인 존재들. <마을-아치아라의 비밀>은 보는 사람에 따라 이문열의 단편소설 <익명의 섬>부터 미드 <트윈 픽스>, 에드거 라이트 감독의 <뜨거운 녀석들>이나 영화 <도희야> <이끼> <불신지옥> 등을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소재로 보면 새로울 것이 없지만 마을을 어떻게 다루는가가 바로 세계관이고 다른 이야기가 된다. 이 드라마 역시 그렇다.
이곳은 어떻게 십년간 범죄 없는 마을일 수 있었을까? 오래전 누군가에게 납치, 강간을 당했던 중년 여인은 말 많은 마을에서 입을 꾹 닫고 살아왔다. 또한 백골의 신원을 밝히기 위해 우선 마을에 여성 실종자가 있는지 수소문하자, 소식이 끊긴 여자들의 가족은 자발적인 가출로 믿고 실종의 가능성을 부인한다. 선명한 악인이 주도하는 조직적인 은폐가 아니어도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는 너무나 손쉽게 덮어지고 사라질 수 있었다. 3회 소제목인 ‘아무도 찾지 않는 여자’란 연고 없는 외지인에 한정하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