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히틀러가 다시 살아나서 베를린 곳곳을 돌아다닌다면? 브란덴부르크문 앞에 등장한 히틀러를 보고 행인과 관광객들이 몰려와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고 사인을 받으려는 행렬이 이어졌다. 이건 영화 속 장면이자 실제 상황이다. 다피트 브넨트(<컴뱃 걸스> <랜드>) 감독이 티무르 베르메스의 베스트셀러 소설 <그가 돌아왔다>(Er ist wieder da)를 영화화했다.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현실과 픽션을 넘나드는 이 영화는 사샤 바론 코언 주연의 코미디 풍자영화 <보랏: 카자흐스탄 킹카의 미국 문화 빨아들이기>를 연상케 하는 지점이 많다. 70년 만에 깨어난 진짜 히틀러는 현대 독일에선 패러디 코미디언으로만 인식될 뿐이다. 히틀러를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코미디언이라고만 생각하며 이용하려는 민영 방송국 관계자들과 ‘세계정복’ 과업을 진행하려는 ‘진짜’ 히틀러가 좌충우돌하는 해프닝이 영화의 골격을 이룬다. 브넨트 감독은 4주간 독일 전역을 돌아다니며 히틀러를 접한 행인들의 반응을 기록한다.
찰리 채플린부터 시작된 히틀러 풍자는 이미 독일에서도 더이상 금기가 아니다. 영화 속 대부분의 사람들은 히틀러를 코스프레하는 코미디언이라고 생각하여 함께 웃고 즐긴다. 한편 히틀러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며 극우적 성향을 당당하게 드러내는 이들도 보인다. 올해로 1주년을 맞는 독일 극우운동단체 ‘페기다’(PEGIDA•서구의 이슬람화에 맞선 애국적 유럽인들의 줄임말)가 난민 사태에 힘입어 기승을 부리고 있는 지금, 독일인들은 정말로 히틀러를 조소해도 될까? 코미디로 시작된 영화가 공포영화로 변하는 순간이다. 제작자 크리스토프 뮐러는 “정치를 혐오하거나 독일의 과거를 건드리고 싶어 하지 않는 이들을 흔들어 깨울 작정으로 만들었다”고 밝혔다. <그가 돌아왔다>는 개봉 2주차 박스오피스 2위를 차지하며 흥행에는 어느 정도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독일 언론들로부터 큰 점수를 받지는 못했다. 독일 유력 주간지 <슈피겔>은 “너무 단순한 설정”을 지적했고, 유력 일간지 <쥐트도이체 차이퉁>은 “영화가 갈피를 못 잡는다”라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