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 영화잡지를 만들자.” 10년도 더 된 오래전, 타 영화잡지의 한 선배가 그런 얘기를 꺼낸 적 있다. 믿기 힘들지만 월간지 <키노>와 <스크린>과 <프리미어>를 비롯해 주간지 <씨네21>과 <필름2.0>과 <무비위크>와 <씨네버스>, 그렇게 무려 7개의 영화잡지가 공존하던 시절, 1박2일 출장으로 다들 모였던 누군가의 방에서 술잔을 기울이던 때였다. 영화잡지 수가 반 토막난 지금 오히려 타 잡지에 어떤 기자가 있는지, 아무개 기자는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잘 모르지만 그때만 해도 수시로 교류를 가졌었다. 해외 출장을 가서 같은 방을 쓰는 일도 잦았고, 거의 모든 한국영화가 촬영현장 공개를 하던 때였으니까, 비록 소속된 잡지는 달라도 꽤 친하게 지내던 때였다.
물론 그 선배가 농담처럼 그런 얘기를 꺼낸 이유는, 당연히 친분 때문이 아니라 잡지들간의 치열한 ‘경쟁’ 때문이었다. A잡지는 섭외에 성공했는데 넌 무엇을 했느냐, B잡지는 현장 잠입에 성공했는데 우린 어떻게 된 거냐, 라며 거의 모든 기자들이 매주 데스크에 시달리던 때라 차라리 한개의 영화잡지에 오손도손 모여 있었으면 좋겠다는 얘기였다. 당장 나부터 당시 모 배우가 절대 인터뷰 안 한답니다, 라는 얘기를 편집장에게 전했음에도 불구하고 며칠 뒤 타 잡지에 버젓이 그의 인터뷰가 실려 있는 걸 보고서 심기가 불편한 상태였다. 그래서 국정 영화잡지가 생긴다면, 제일 처음 영화 본 사람을 따라 다들 그 영화에 대한 호불호를 정하고, 찬반양론 무시하고 별점도 모두 똑같이 매기며, 감독이나 배우도 사이좋게 돌아가며 만나자고 했다. 다들 맺힌 게 많았던지 마른안주를 내던지며 웃고 떠들었다. 왜냐하면 농담이니까.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일이니까.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버젓이 일어나고 있는 현실을 보며, 괜히 그날의 술자리가 떠올랐다. 콘텐츠의 효과나 제작 공정에 있어 교과서나 잡지가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요즘은 정말이지 글을 쓰고 교정을 보고 잡지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참담한 기분이 든다. 사상에 대한 얘기는 꺼낼 필요도 없이, 자신의 입장이나 주장과 무관하게 지켜야 할 최소한의 ‘팩트’라는 것이 있다. 우리, 인간 되기는 힘들어도 제발 거짓을 말해서는 안 된다. 팟캐스트 ‘노유진의 정치카페’에서 유시민 작가가 말한 것처럼, 과정이야 어찌됐건 돈만 뜯어내면 된다는 식으로 ‘보이스피싱’을 해서는 안 되는 거다.
인천다큐멘터리포트를 다룬 이번 특집은 한국 다큐멘터리의 현재에 대한 소고라 봐도 좋을 텐데, 요즘처럼 다큐 소재가 쏟아지는 광경을 보며 묘한 감상에 젖게 된다. 소재가 풍성해지는 한편으로 규제나 자기검열도 늘어나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특집 대담에 참여한 강석필 감독의 말처럼 평균 관객이 3천명 남짓밖에 되지 않는 그 시장의 냉기와 마주선 그들에게 힘찬 응원을 보낸다. 문득 1991년 일본에서, 다큐멘터리 <산리즈카> 7부작(1968∼77)을 만든 오가와 신스케와 만났던 변영주 감독이 들려준 이야기가 떠오른다. “다큐멘터리의 가장 큰 기쁨과 미학이 무엇인가요?”라는 그의 물음에 오가와 신스케는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어떻게 영화가 나올지 모르지만 그저 ‘사랑합니다’라고 열번 외쳤더니 어느 순간 작품이 나왔다.” 세상이 얼마나 더 나빠질지 알 수 없지만, 아무튼 그처럼 ‘사랑합니다’ 하고 수십번 외쳐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