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이름과 앨범 이름 모두 사람들을 당황시키는 쪽에 가깝다. 솔직히 나도 ‘이게 뭐지?’ 하면서 그냥 지나칠 뻔했다. 하지만 앨범을 중간 정도 들었을 때 확신했다. 이거, 물건이구나. This is a thing.
세속에 얽매이지 않는 것, 불완전함의 부각이라는 의미를 지닌 와비사비룸은 에이뤠, 제이플로우, 장유석으로 구성된 힙합 그룹이다. 그리고 와비사비룸의 두 번째 EP인 《물질보다정신》은 요즘 발매된 그 어떤 한국 힙합 앨범보다 확고한 정체성과 색깔을 지니고 있다. 비록 이 앨범에 담긴 그들의 메시지에 모두 동의하는 것은 아니나 앨범 내내 유지되는 그들의 선명하고 각 잡힌 태도가 주는 쾌감을 거부하기란 아무래도 어렵다.
앨범의 프로덕션은 탄탄하다. 전에 없던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섞이고 변하기 전’의 힙합을 연상하게 하면서도, 프로듀서만의 기운과 변칙을 군데군데 더해 신선함을 불어넣는 솜씨가 놀랍다. 수준의 차이는 늘 이런 미묘한 부분에서 결정된다. 랩 역시 좋다. 이들의 낙차가 심하고 역동적인 랩 플로는 어떨 땐 배우의 연기를 듣고 있다는 착각마저 일으킨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들이 음악적 도구로서 랩이 지닌 규칙과 멋을 잃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즉 내레이션이나 웅변, 연기 등이 아니라 랩이어야 하는 이유가 이들의 랩에는 있다. 내공이 추측되는 지점이다.
이 앨범의 수록곡 <분장>과 <밥말리>의 뮤직비디오를 찾아보길 권한다. 영상이 오히려 음악의 힘을 죽이는 경우도 있지만 이 경우는 반대다. “밥말리처럼 나도 원초적인 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