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의 자서전‘씩이나’ 읽을 때는 당연히, 그의 한평생이 궁금할 정도로 좋아하거나 존경하거나 호기심이 있어야 할 텐데, 가토 슈이치의 자서전 <양의 노래>를 읽으면서는 그렇지 않다는 당혹감을 먼저 느꼈다. 그의 책이라면 <가토 슈이치의 독서만능>과 <번역과 일본의 근대>를 읽긴 했지만 자서전을 살 정도로 궁금하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그런데 이 책, 재미있다. 1919년에 태어난 가토 슈이치가 도쿄대 의학부 박사학위를 취득한 게 1943년의 일. 1951년부터 프랑스로 건너가 연구를 계속했는데 1958년 아시아 아프리카 작가회의 참가를 계기로 의업을 접고 문학평론가로 활동하기 시작했고, 반전 사회운동에 앞장섰다. 그리고 이 책은 20세기 중반에 여러 나라를 여행하고 공부하며 글을 쓴 일본인의 사생활을 알 수 있는 기록물로 뛰어나다. 일반화할 수 있는 기록은 전혀 아닐 테지만.
일단 일본이라는 나라의 경제력과 문화 수준을 알 수 있는 대목들이 여럿 있다. 가토 슈이치의 외할아버지에 대한 책 초반의 서술도 그러하지만, “1950년대 전반에는 도쿄에서 성장한 남자가 파리에서 살게 되었어도 적어도 의식주 같은 일상생활에서 커다란 차이를 느끼지는 않았다”, “커피는 진기한 먹거리가 아니었고, 침대에서 자는 것은 혼고 병원 이후의 습관이었다” 같은 대목이 특히 그렇다. 그리고 세계대전의 포화로 성큼성큼 전진하던 일본을 학생 신문으로 바라보던 소회들도 있다. 고등학교 시절, 선생님의 말을 들으며 “그때 우리는 지금 이곳에서 마지막 자유주의자의 유언을 듣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느꼈다”고 하는데, 이후 벌어지는 상황은 그저 글로 읽는 것만으로도 오싹하다. 국민정신총동원령 이후 도시에서 “초등학생은 길을 오가는 젊은 여자들에게 ‘파마는 하지 맙시다’라고 소리쳤고, 대학 학력에 열등감을 느끼는 남자들은 전차 안에서 외국어 교과서를 읽고 있는 대학생을 발견하면 ‘이 비상시국에 적성어 책을 읽는 사람이 다 있어, 그러고도 네가 일본인이냐’라고 큰 소리로 떠들었다”. 히로시마에 대한 글도 있다. “원폭을 직접 경험했던 사람들은 아무리 애를 쓰고 부탁해도 그 이야기를 꺼내려 들지 않았다.” 구체적인 여러 묘사보다 더 기억에 남는 문장이다.
국내외 정치에 대해 적지 않은 부분을 할애하는 이 책은 저자가 50이 되던 해에 쓰였으며(정확히는 <양의 노래> <(속)양의 노래> <양의 노래 그 후> 세 글을 묶은 책인데, <양의 노래>(1968)가 책의 구할이다), 청장년기를 지나온 저자의 여러 여자와의 만남에 대한 대목들도 여럿 있다. 그리고 그 대목들은 제법 서정적인데, <교토의 정원>과 <겨울 여행>은 그런 ‘연애 후일담 문학’(그냥 만들어낸 말인데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계열로는 손꼽을 만한 유려한 감상성의 극치를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