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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 추천 도서 <나는 남편을 죽이지 않았다>
문동명 사진 백종헌 2015-10-21

<나는 남편을 죽이지 않았다> 류전윈 지음 / 문현선 옮김 / 오퍼스프레스 펴냄

신사실주의는 중국이 문화대혁명을 마치고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로 들어선 이후,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내내 전국적으로 세력을 떨친 문학운동이다. 이제는 교조적 이념 선전으로 전락해버린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벗어나 현실의 모습들을 어떠한 조작 없이 그대로 작품 안에 반영하는 걸 목표로 삼는다. 류전윈은 신사실주의의 대표 주자로서 옌롄커, 쑤퉁, 위화, 모옌과 함께 중국 현대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로 추앙되고 있는 작가다.

류전윈의 최근작 <나는 남편을 죽이지 않았다>는 리설련이라는 여자의 인생사를 쫓아간다. 리설련은 둘째아이를 임신한다. 하지만 그녀는 축복받을 수 없다. 정부의 산아 제한 정책 때문에 둘째아이를 낳는 것이 불법이기 때문이다. 리설련은 위장 이혼이라는 아이디어를 떠올려 바로 실행에 옮기지만, 남편은 그사이 다른 여자와 결혼하고 아이까지 갖는다. 그녀는 소송을 진행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고, 전국인민대표대회가 열리는 상황에서 법원과 정부는 리설련의 호소를 무시한다. 그녀는 역사의 격랑에 휩쓸리면서 치열한 투쟁을 계속해나간다.

류전윈은 힘 있는 필치로 리설련의 고단한 삶을 장대하게 그려낸다. 20년이란 긴 세월 동안 그녀가 경험하는 사건들은 그 자체로 큰 울림을 갖는다. 하지만 류전윈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총 412페이지에 달하는 <나는 남편을 죽이지 않았다>는 이야기의 대부분을 타이틀 ‘서문’ 아래 그녀만을 바라보며 진행한다. 그리고 387페이지에 이르러서야 리설련의 이야기를 접고 ‘본론’을 시작하며 그녀의 고소로 인해 직장을 잃은 한 남자를 보여준다. 하지만 사내의 삶은 그녀에 비해 훨씬 행복하다. 농담이라는 부제가 붙은 본론은 지금까지 지난하게 그려온 리설련의 삶이 참으로 허무한 것이었음을, 어떠한 상황에서도 행복은 매 순간을 자신이 어떻게 결정하느냐에 따라 찾아오는 것임을 피력한다. 류전윈이 작품 속에서 한 범부의 말을 통해 던지는 경구는, <나는 남편을 죽이지 않았다>의 핵심을 정확히 관통한다. “그런 말이 있지요. 목을 매는 데 한 나무만 고집하지 마라. 다른 나무로 바꾸면 시간을 벌 수 있다.”

위장 이혼으로 시작된 비극

포도 한 알을 놓고 서른여 마리 원숭이가 서로 싸우더라도 결국 그 포도 한 알은 한 마리 원숭이의 몫이었다. (…) 지금 사람들은 멀리 보는 안목이 없어서 정치라는 것도 상거래처럼 하나를 얻으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러나 포도가 그의 손 안에 있는 한 그 원숭이들은 끊임없이 주위를 맴돌 것이다.(269쪽)

날은 이미 새카맣게 어두웠다. 연말이라, 식당 밖에서는 누군가가 폭죽을 터뜨리기 시작했고 어떤 사람은 불꽃놀이를 시작했다. 창문 너머로 불꽃이 오색찬란하게 밤하늘을 수놓으며 사방으로 빛을 뿌렸다.(4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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