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독서의 계절. <씨네21>의 북엔즈가 가을에 어울리는 책 여섯권을 소개한다. 나카마치 신은 비밀이 밝혀지는 순간까지 독자에게 속임수를 던지고, 구병모는 동화와 민담의 세계에 뛰어들어 소설 창작의 가능성을 찾는다. 류전윈은 웃음을 직접 노출시키지 않은 채 자기만의 거대한 농담을 만들어낸다. 잭 이브라힘은 쓰린 과거를 그대로 노출해 세상의 상처를 보듬고, 마크 쿠시너는 지구 곳곳을 관찰해 현재와 미래를 한꺼번에 제시한다.
나카마치 신의 두 소설 <모방살의>와 <천계살의>는 독자를 미로에 빠트릴 작정으로 장광설을 늘어놓는다. 그는 미스터리 소설의 필수 요소인 범인에 대한 은폐를 극단적으로 몰아붙여, 이야기를 부지런히 따라온 독자들의 잰걸음을 일거에 무색하게 만들어버리며 놀라움을 선사한다. 아유카와 데쓰야, 애거서 크리스티 등 미스터리 거장들의 역작을 탐독하며 작가의 꿈을 키우던 그는 자신이 활동하던 시대엔 외면당했지만, 40년이 지난 지금 한국독자들의 흥분을 불러일으키기엔 충분하다.
동화적인 세계를 구축함으로써 현실의 속살을 들췄던 구병모. 지난봄 발표한 <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로 2015 오늘의 작가상을 받은 그는 연이어 안데르센과 그림 형제의 동화와 민담을 토대로 쓴 새 소설집 <빨간구두당>을 발표했다. <빨간구두당>은 어김없이 구병모의 소설이다. 여덟편의 단편은 <위저드 베이커리>와 <피그말리온 아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한국을 사는 이들을 위한 우화다.
인민들의 비참한 생활상을 가감 없이 보여주면서도 특유의 유머를 잃지 않았던 중국의 대문호 류전윈의 근작 <나는 남편을 죽이지 않았다>는 상당 부분 웃음기가 배제돼 있다. 오랜 시간 무모한 소송을 계속하며 야위어가는 한 여자의 20년을 쫓아가는 내용으로 내내 건조한 톤을 유지한다. 하지만 류전윈은 여전히 그대로다. 전작들에서처럼 세세한 상황에서 웃음을 새기기보다 소설 전체의 형식을 담보로 나름의 농담을 심어놓았다. 서사를 넘어 이야기 구조를 매만져 던진 농담에 실려 있는 지혜의 무게가 꽤나 묵직하다.
현대사회의 색다른 지침서 노릇을 자처한 테드(TED) 강연을 재구성한 <테러리스트의 아들>과 <미래의 건축 100>은 에세이임에도 불구하고 소설을 방불케 하는 거짓말 같은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테러리스트의 자식인 잭 이브라힘이 겪은 고난은 상상을 초월한다. 하지만 그는 폭력의 굴레를 딛고 일어서, 온 세상의 폭력에 반대하는 가르침을 전한다. 건축가 마크 쿠시너가 유쾌하고 진지하게 쓴 <미래의 건축 100>은 분명 우리가 사는 세상에 자리하고 있지만 좀처럼 떠올려보지 않은 세계 속 건축물을 발견하는 기쁨을 준다. 그리고 미래는 예상보다 훨씬 가까이 와 있음을 깨닫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