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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액션을 설계하고 싶지는 않았다”
장영엽 사진 이동훈 2015-10-20

<자객 섭은낭> 허우샤오시엔 감독

기다림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허우샤오시엔 감독의 8년 만의 신작이자 첫 무협영화 <자객 섭은낭>은 21세기의 새로운 클래식으로 기억될 영화다. 당나라 시대, 누구보다 뛰어난 암살자이나 한때 사랑했던 남자를 죽여야 하는 딜레마에 처한 섭은낭의 모습을 완성해나가는 과정에서 무한한 상상의 자유를 느꼈다고 허우샤오시엔은 말한다. 더불어 이 대만 출신 거장의 무협영화는 리얼리스트로서의 그의 면모를 다시금 확인하게 해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자객 섭은낭>은 당신의 첫 무협영화다. 무협 장르의 영화를 준비하며 특별히 고민되었던 지점이 있나.

=내가 살아본 적이 없는 당나라 시대를 어떻게 현실적으로 표현해낼지에 대한 고민을 가장 많이 했다. 다양한 서적을 읽었지만 그중에서도 당나라의 정치와 생활상을 자세히 묘사한 사마광의 <자치통감>이 도움이 됐다. <자객 섭은낭>을 준비하며 특히 중요하게 생각한 건 몇 글자 안 되는 역사적 기록으로부터 인물의 배경과 생각을 추출해내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장첸이 연기하는 티안지안에겐 아버지가 있었다. 그는 티안지안이 열두살 때 칼을 들고 끔찍한 표정으로 죽어 있었는데, 그 모습을 직접 봤다는 경험으로부터 티안지안의 성격이 형성되는 것이다. 티안지안이든 섭은낭이든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을 만들어내는 과정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어떤 환경에서 성장했는지 완벽하게 이해하지 않으면 한 인물을 표현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역사라는 제한된 시간 속에 갇혀 그 안에서 무언가를 끄집어내야 하는 고통은 있었지만, 나는 그 속에서 엄청난 자유를 느꼈다.

-이 영화는 9세기 당나라의 전기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원작 소설의 어떤 점에 매료되었나.

=원작에서 섭은낭을 제외한 등장인물들은 모두 실존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렇다면 생각해보라. 당나라의 소설가가, 왜 자신의 나라에 있는 실제적 인물을 둘러싸고 있는 한명의 허구적 인물을 만들어냈을까. 게다가 그 인물은 자객이다. 작가가 섭은낭이라는 인물을 만든 의도를 짐작해보는 과정에서 당나라라는 특정 시대를 상상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영화 속 섭은낭은 원작의 그녀보다 훨씬 복잡한 내면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녀는 누군가를 죽이기 전에 너무 많은 생각을 하고, 그 점이 암살자 섭은낭의 독특한 개성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녀가 계속해서 암살에 실패하는 과정을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이유가 궁금하다.

=그게 섭은낭의 성향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영화의 초반부, 섭은낭이 누군가를 죽이러 갔다가 그가 아이를 안고 있는 모습을 보고 차마 죽이지 못하는 장면은 원작 소설에도 들어 있는 내용인데, 나는 이 대목을 읽은 뒤 비로소 섭은낭의 성격을 완성할 수 있었다.

-당신은 모든 액션이 캐릭터의 개성에 맞게 사용되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섭은낭이라는 여성 암살자의 액션을 구상하며 어떤 고민을 했나.

=우선 모든 액션은 합리적이어야 했다.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액션을 설계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섭은낭이 자객이라는 설정이 중요하다. 자객은 언제나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 있다가 적시에 나와서 단칼에 해치워야 하지 않나. 그런 그녀의 역할에 단도라는 무기가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단도를 쓰려면 소리 없이 누군가에게 다가갈 수 있어야 하고, 바람처럼 움직여 단번에 상대방을 처단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섭은낭의 액션을 보여주는 컷도 호흡이 짧은 편이다. 하지만 그녀가 사랑했던 남자인 티안지안을 만나는 장면에서는 좀 다르다. 그와 싸우는 장면에서는 티안지안을 차마 죽일 수 없는 섭은낭의 복잡한 마음을 보여줘야 했기에 호흡이 비교적 길게 촬영했다.

-<자객 섭은낭>은 시나리오 단계에서부터 배우 서기를 떠올리며 쓴 작품인가. 서기라는 배우의 개성이 이 영화에 미친 영향도 궁금하다.

=이 영화를 찍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서기를 주인공으로 생각했다. 그녀는 섭은낭처럼 의협심이 강하고,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보는지 신경쓰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그대로 밀고 나가는 스타일의 사람이다. 2000년에 한 샴푸광고를 보고 서기라는 배우의 존재를 처음 알았다. 느낌이 좋아 만남을 청했는데, 이미 내가 유명한 감독이라는 걸 알면서도 전혀 기죽거나 두려워하지 않아 “이 친구 봐라” 하는 생각을 했었다. (웃음) <밀레니엄 맘보>를 찍을 때 바람 피우던 남자를 내내 기다리다가 분노를 표출하는 장면이 기억난다. 서기가 캐릭터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의자를 들어 상대배우에게 던지려고 하더라. 가만히 놔두면 배우가 다칠 것 같아 그 자리에서 컷을 외쳤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밀레니엄 맘보>를 칸국제영화제에서 첫 상영한 뒤, 서기가 그 장면을 보고 호텔방으로 돌아가 펑펑 울었다고 하더라. 감독이 울라면 울고, 시키는 대로만 하는 연기를 하다가 처음으로 배우로서의 자신을 자각했기 때문이었다. 그 뒤로 그녀와 작업을 꾸준히 하고 있다. 어떤 아이디어나 소재를 영화로 만들고 싶다고 생각하다가도 그걸 현실화해줄 마땅한 배우가 떠오르지 않으면 영화로 만들지 않을 정도로 내게는 배우가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서기는 내게 무척 중요한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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