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로 말할 것 같으면 다치는 일을 식은 죽 먹기처럼 하는 사람이다. 세명이나 되는 제부들은 아픈 엄마를 볼 때마다 이렇게 탄식하곤 한다. 아무리 봐도 인하대병원 돈은 장모님이 다 벌어다주는 것 같다니까요.
지난해 추석에는 펄쩍 뛰는 빨간 대야만 한 광어를 회로 치다가 엄마 손이 칼에 베였다. 피가 줄줄 새어나오는 손이 무슨 대수라는 양 수건으로 둘둘 감은 채 병원에 간 엄마는 도합 아홉 바늘을 꿰맸고, 그러고 돌아와서는 베란다에 쪼그리고 앉아 그렇게 붕대 감은 한손에 비닐장갑을 끼고 그놈의 광어새끼를 마저 회로 쳤다. 우리는 초고추장인지 엄마의 핏물인지 입에서 알싸하게 씹히는 광어회 접시를 좋다고 다 비워냈다.
올해 설날에는 연안부두에 가다가 트럭에 차가 받히는 교통사고로 엄마가 병원에 입원했다. 목에 깁스까지 한 채 절대안정을 요하는 의사의 소견에도 엄마는 외출증을 끊고 나가 장을 봐서는 뭇국을 끓이고 삼색 나물을 볶으며 육전에 어전을 부치고 사과에 배에 감에 대추를 씻고 밤을 다 까더니 아버님, 이제 더는 못하겠네요, 하며 병원으로 향했다. 우리는 엄마가 E.T가 된 목으로 차려놓은 차례 음식에 잽싸게 밥만 퍼서 한 상을 다 비워냈다.
그리고 어김없이 올해도 추석이 돌아왔다. 이번 명절은 무탈하게 지나가려니 전날 음식 준비를 마친 엄마가 씻겠다며 욕실로 들어가더니만 순간 퍽 하고 콘크리트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냅다 달려가니 욕조에 머리를 부닥친 엄마가 세면대 아래 털썩 주저앉아 있었다. 피, 피, 아 피 좀 봐. 욕조 여기저기 튀어 있는 피에 놀라 엄마를 일으키니 어른한테 차마 할 소리는 아니지만 눈썹 아래 찢어진 부위가 개구리 울음보처럼 부어오른 건 둘째치고라도 진짜 눈텡이가 밤텡이가 되어 있었다. 채 7분도 안 되어 119가 왔다. 밖에서 앵앵 119가 울어대는데도 엄마는 피 흘리는 눈으로 유유히 윗니 아랫니 거품을 잔뜩 내어가며 이를 닦아댔다. 엄마 미쳤어? 지금이 이 닦을 때야? 갈 때 가더라도 이는 닦아야지. 나 게장 실컷 빨았는데 의사한테 고린내를 풍길 수는 없지 않냐.
명절날 새벽의 대학병원 응급실은 놀랍게도 만원 사례였다. 침대 한칸을 차지하려고 간호사 꽁무니를 쫓아다니는데 저마다 침대에 누운 사람들의 갖가지 병명이 한눈에 알아차려졌다. ‘장염이거나 술병이거나 교통사고 환자가 대부분이 아니겠어?’라는 추측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계단에서 뒤로 넘어져 뒤통수가 깨진 아줌마에, 힘주어 똥을 누다 탈장이 된 아줌마에, 손자 업고 장에 갔다오다 넘어져서 턱이 깨진 아줌마에, 엄마처럼 화장실에서 넘어져 코뼈가 박살난 아줌마에… 이 가을 한가위의 슈퍼문은 아줌마들 아프라고 뜨는 달인가.
늙으면 다리에 힘이 없어져 자꾸 넘어지는 겨. 어쩔 수가 없는 겨. 그러다 영 못 일어나는 겨. 절구 방망이를 떨어뜨려 엄지발가락 뼈가 바스러져 왔다는 엄마 침대 옆칸의 할머니가 말했다. 일곱 시간 동안 서서 얼음주머니로 엄마의 눈을 마사지한 나보다 할머니의 말에 엄마가 더 큰 위로를 받는 듯했다. 따지고 보면 우리 엄마만 유난스레 아플까. 세상 모든 엄마들은 다 아프면서 죽어가고 있다는 슬픈 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