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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부산에서 띄우는 첫 번째 편지
주성철 2015-10-09

부산에서 영화제 데일리 마지막 9호를 작업하며 이 글을 쓰고 있다. 풍성하고 즐거운 만남이 올해도 변함없이 이어졌고 <씨네21> 또한 영화제와 함께 스무살을 맞은 해라 그 기분이 더 특별했던 것 같다. 하지만 영화제 후반부에 접어들면서 데일리 사무실로 비보가 날아들었다. 데일리 후반부를 책임진 신두영 편집기자에게 서울로부터 “차 좀 빼달라”는 한 낯선 남자의 전화가 걸려온 것이다. “빨리 KTX 타고 가서 차 빼줘야 하는 거 아니냐”는 손홍주 사진부장의 걱정까지, 그렇게 이런저런 에피소드와 함께 영화제가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물론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의 주차 문제여서 굳이 ‘서울행’을 할 필요는 없었음도 밝혀둔다.

이번 부산국제영화제 특집을 보면 알겠지만, 올해 부산은 그야말로 화려한 게스트들의 성찬이었다. 지난해에 이어 특집호 커버를 장식한 탕웨이를 비롯해 하비 카이틀, 나스타샤 킨스키, 소피 마르소, 나가사와 마사미 같은 배우들은 물론 허우샤오시엔, 지아장커, 차이밍량, 두기봉,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루카 구아다니노, 클로드 를르슈, 레오스 카락스 감독까지 앨범으로 치자면 ‘베스트 모음집’쯤 된다고나 할까.

개인적으로는 올해 핸드프린팅 행사와 오픈토크를 가진 두기봉 감독과의 만남이 인상깊었다. 지난 2009년 영화제 기념 책자 제작을 위해 인터뷰를 가졌을 때, 유독 애정이 가는 자신의 영화에 대해 물었고 그는 <유도용호방> <PTU> <참새> 세편을 꼽았었다. 농담처럼 5년여의 시간이 지난 지금 그 리스트가 달라졌냐고 물었더니, 너무나 호탕하게(역시 따거!) <참새>를 빼고 <익사일>을 꼽았다. 그 이유는 이러했다. “<참새>는 소매치기 주인공 임달화에게 카메라를 들게 하는 등 사라져가는 홍콩의 모습을 담아내고자 했던 작품이었다. 하지만 다시 보니까 그런 생각이 앞선 나머지 영화의 전체적인 흐름과 구도는 나빠졌던 것 같다”며 너무나 솔직하고 진지한 답을 들려줬다. ‘두기봉 빠’로서 소매치기가 스틸 카메라를 들고 홍콩의 이곳저곳을 담는다는 설정이 그저 낭만적으로 느껴졌던 사람에게, 그는 뒤늦게 순위에서 빼버릴 정도로 그러한 설정이 ‘오버’였다고 고백한 것이다. 물론 내게 <참새>는 여전히 매혹적인 영화지만 그런 감독의 호방한 태도에 다시 한번 반해버렸다. <화려한 샐러리맨>으로 주윤발과 다시 조우한 만큼 언젠가 ‘총’이 등장하는 두기봉 영화에서 그를 보는 것이 소원이다.

몇번의 GV와 아주담담 대화를 통해, 툴툴대면서도 시원시원하고 재빠른 답변으로 영화제 내내 팬들로부터 ‘레오스 까탈스’라는 애칭으로 불린 레오스 카락스도 반가웠다. 아주담담이 진행되는 동안 무려 담배를 피우는 포스! 그가 내뿜는 연기를 ‘직방’으로 맞던 옆자리의 진행자이자 흡연자인 허문영 선배의 묘한 표정이 잊히질 않는다. 아무튼 매체와의 인터뷰보다 한번이라도 더 관객과의 만남을 소중히 한다는 그다. 어떤 질문에도 옛 기억을 하나하나 끄집어냈다. 그런 분위기에 편승하여 평소 흥얼거리는 노래 한소절만 불러달라는 관객의 요청도 있었지만 ‘절대 안 된다’며 웃었다. 그렇게 영화제의 밤은 무르익어갔다. 사정상 이번 특집에 따로 인터뷰를 싣지 못한 두 감독에 대한 안타까움을 이렇게나마 적어본다. 한국 감독들과의 만남은 다음주 특집으로 이어지니 의아해하지 마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