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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아들 죽게 놔두는 부자나라 미국아! 아버지가 폭발했다
2002-03-15

존 큐 애치볼드(덴젤 워싱턴)는 철강 노동자다. 아내는 슈퍼마켓 파트타임 점원, 열 살배기 아들 마이크는 야구광이자 보디빌딩팬인 개구쟁이다. 한마디로‘가난하지만 행복한’ 가정이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성실한 노동자의 행복을 보장해준 적은 거의 없다. 상쾌한 어느 날 아침 존 큐의 자동차는 압류당해 끌려간다. 결국 화해하긴 하지만 부부는 신경이 곤두서 말다툼을 벌인다. 가난하고 성실한 이들이 삶을 견딜 수 있는 한계상황은 아마 이런 정도까지일 것이다. 그날 존 큐의 아들 마이크가 야구 게임 도중 쓰러진다. 심장이 이상 비대해 혈압이 떨어지다 결국 멎게 되는 희귀병이다. 당장 심장이식 수술을 받지 않으면 그에게 남은 시간은“한 달 아니면 일 주일, 아니면 하루”다. 수술 비용은 무려 25만달러, 수술비용의 30퍼센트를 맡기지 않으면 심장이식 수술의‘대기자 명단’에도 올리지 못한다. 심장 전문의는 원무과에 책임을 미루고, 원무과 직원은 병원 규정을 내세우며 은근히 퇴원을 종용한다. 닉 카사베츠 감독의 <존 큐>는 세계에서 가장 부강한 나라 미국의‘삶의 질’이 실상 어떤 것인지 들여다본다. 노동자 존 큐는 사업주의 조업 단축으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비정규직 노동자로 전락해 있다. 때문에 아들의 심장이식 수술은 그의 의료보험 범위를 벗어나 있다. 존 큐는 아들을 살려내기 위해 병원, 보험회사, 정부기관, 언론사를 찾아다니며 호소하지만, 이 부강한 나라의 거대 시스템 어디에도 이 연약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장치는 마련돼 있지 않다. 차가운 의사, 사리에 밝은 원무과 직원, 계산기 두드리는 보험사 직원, 능글거리는 언론인, 이게 바로 자본주의의 얼굴이라고 영화는 말한다.

아이의 맥박수는 위험수치에 접근하고,“어떻게 좀 해 보라”는 아내의 절규는 존 큐를 미치게 만든다. 존 큐는 심장 전문의를 끌고 병원 응급실을 점거한 채 인질극을 벌인다. 경찰이 병원을 포위하고 수천의 인파가 몰려든다. 경찰서장은 선거를 의식해‘흉악범’에 대한 단호한 대처의 본보기로 삼겠다며 저격수를 들여보낸다. 존 큐의 말을 한 귀로 흘리던 쇼 진행자는 `인질극 라이브’를 진행하며“나 이제 완전히 떴다!”고 외친다. 거대도시 안에 홀로 고립된 존 큐는 심장 전문의에게 수술칼을 들라고 한 뒤, 자신의 심장을 아들에게 주겠다고 나선다. 여기서부터 영화는 좀 혼란스럽다. 아들의 심장이 곧 멎을 수도 있는 절망의 나락에 빠진 존 큐의 절규는 공분과 비통의 눈물샘을 자극하지만, 인질극으로 발전하면서 드러나는 미국 의료현실에 대한 폭로는 감정의 선을 급강하시키는 구실을 한다. 감독은 사회문제에 대한 `정서적 호소’에 그치는 대신, 아버지라는 이름의 작은 영웅이 시스템에 맞서 이기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지금의 시스템이 얼마나 허점투성이인지 보여주려고 마음먹은 듯하다. 이야기의 개연성은 손상을 입었지만, 덴젤 워싱턴의 연기는 심금을 울리기에 모자람이 없다. 아이를 둔 아버지라면 심장에 손이 가게 하는 영화다. 15일 개봉. 이상수 기자lees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