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만대 감독이란 이름과 ‘덫’이라는 영화 제목에서 풍겨오는 기운의 조합은 굳이 장황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이 영화가 무엇을 보여줄 것인지 어렴풋이 짐작하게 만든다. 영화는 사소한 호기심에서 시작된 한 남자의 시선이 서서히 시뻘건 탐욕으로 물들어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봉만대 감독의 최근작들과 비교해보면 다소 낯설고 거친 분위기가 느껴지는 어두운 색채의 영화다.
작가의 권익을 무시하는 영화계 관행과 인간관계에 치이며 사는 시나리오작가 정민(유하준)은 이번엔 진짜로 자신만의 작가 정신을 발휘한 작품을 한편 쓸 목적으로 시골로 향한다. 정민은 시골길을 한참 달리다가 쓰러져가는 표지판 하나를 보더니 무작정 산속에 자리잡은 어느 민박집을 찾아간다. 어딘지 이상한 기운을 품고 있는 허름한 민박집 마당 풍경에 기분이 상한 정민은 다시 차를 돌려 떠나려 하는데, 그 순간 그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허름한 방문을 열고 나온 짧은 미니스커트 차림의 여고생 유미(한제인)다. 그녀와 눈이 마주친 정민은 순간 호기심이 발동한다. 누추하기 짝이 없는 이곳에서 시나리오를 쓰기로 결심한 그는 혹시 모를 여고생과의 작은 불상사를 상상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여고생 유미와의 관계는 정민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한밤중에 방문을 벌컥 열고 자신을 도발하는 밤의 유미와 눈도 마주치지 않고 자신을 쌀쌀맞게 대하는 낮의 유미가 과연 같은 인물인지 정민은 헷갈리기 시작한다.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산꼭대기에서 사냥을 하던 한 무리의 사내들이 추위를 피해 이 민박집에 자리를 잡는다. 정민은 추위와 허기에 굶주린 사내들의 밥 시중을 드는 유미를 보며 불안감에 휩싸인다.
영화는 어느 산속 외딴 오두막에 사는 늙은 아빠의 거친 수염과 그를 보살피는 어린 딸의 가녀린 발목으로 대표되는 모든 성적 상상을 총동원한다. 그 사이를 훼방놓는 젊은 남자 정민에게는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질까. 영화의 결말은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 봉만대 감독 특유의 성적 긴장으로 가득한 장면들이 갑자기 등장해 무방비 상태의 관객을 놀라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영화 전체의 거친 완성도는 특정 장면의 탄탄한 긴장감마저 반감시키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