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옛날 옛적 지금으로부터 어언
13년 전, <사랑과 영혼>을 보고서 물론 그 애절한 사랑에 감동했지만 잠깐 동안 이런 생각도 들었다. ‘언체인드 멜로디’가 흐르며 두
주인공이 춤을 추는데, 관객에게 보인 건 몰리(데미 무어)였지만 샘(페트릭 스웨이즈)이 실제로 안고 있던 건 우피 골드버그 아닌가. 샘이
아무리 몰리를 느낀다고 해도 눈앞에 보이는 건 입 거칠고 두루뭉술한 점성술사인데, 과연 그 필이 온전히 전해졌을까. 애인이 없던 시절이라
사랑에만 몰입하지 못하고 그런 사소한 지점에 생각이 미쳤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좀 의아스러웠던 게 사실이다.
2. <번지점프를 하다>를 보고도
그런 비슷한 생각이 들었다. 만약 태희가 현빈으로 환생하지 않고 예컨대 끓는 가래를 긁어 뱉어대는 동네 담뱃가게 할아버지나 엄청난 목소리와
오물로 동네를 휘젓는 술주정뱅이의 모습을 띠고 나타났다면 인우는 어땠을까, 태희의 흔적을 발견했다 한들 그토록 격정적으로 매달릴 수 있었을까
하는, 엉뚱하고도 불온한 생각 말이다(물론 태희가 죽어 환생한 것이므로 인우보다 나이 많은 사람이 될 순 없었겠지만).
3. 영화를 보고나서 한동안 멍했다.
내가 뭘 본 거지. 그들은 결국… 자살했단 말이지. 80년대 대학가에서 그들이 나눈 사랑은 정말 애틋했고… 현빈이, 너무 귀엽고…. 요즘
애들, 진짜 대단하고…. 인우는 존경스런 선생님이었는데…. 영화 앞뒤를 감싸는 고공에서 유영하며 바라본 녹음은 깊고 푸르고…. 생각과 잔영의
부스러기들이 머릿속을 휘젓고 돌아다니다가 바닥에 가라앉자 그제서 깨달았다. 이건 진짜 미친 사랑의 이야기구나. 시간과 존재를 뛰어넘는 광기어린
사랑. 멀쩡한 러브스토리를 보고 나서도 한참 뒤에야 “내가 본 게 러브스토리였구나”하고 알아볼 정도로, 많은 느낌을 동시다발적으로 주어
사람을 얼떨떨하게 만드는 영화였다. 글쎄, 불멸의 사랑이라….
4. 운명적인 사랑이란 없다는 게
내 공식적인(?) 입장이다. 내가 지금 여기서 이 남자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다고 해도 혹시 이 사람을 못만났더라면 또다른 비슷한 사람을
만나 비슷한 방식과 전개로 사랑을 하고 있을 것이란 얘기다. 물론 그 사람 됨됨이의 모자라고 넘치는 차이에 따라, 내가 만들고 쏟아부어야될
환상의 함량이 달라지긴 하겠지만 결국 그 아웃풋은 대개 비슷하지 않겠는가, 하는 게 나의 별 재미없고 현학적인 사랑관이다. 운명적인 게
있다면 그것은 각자의 성격뿐이다. 에로스적 사랑이란 기본적으로, 자족을 위한 자발적 정신병이라는 것도 내 공식적인 사랑관이다. 아니면 성욕의
세련된 발현이거나.
5. <번지점프를 하다>에 나온
인우와 현빈의 사랑은 과연 동성애일까? 이건 생각해보면 볼수록 까다로운 문제다. 제작진은 그것이 동성애가 아니라고 보는 것 같다. 어쩌다
남자아이의 몸을 빌려온 태희를 사랑하는 것일 뿐, 남자를 사랑하는 것은 아니라고. 그가 사랑하는 것은 태희일 뿐이라고. 동성애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들은 다음 생을 기약하며 자살할 수밖에 없었노라고. 하지만 만약 태희가 그런 풋풋한 몸과 싱그러운 소년의 매력을 입고 있지 않았더라도
인우는 그토록 열정적으로 끌렸을까? 남자를 사랑한 거 맞잖아? 그럼 그게 동성애 아닌가? 그렇다면 그들은 왜 자살했지?
6. 벌써 학부형인 친구 하나는
영화를 보고 이런 얘기를 했다. 세상에, 현빈이 엄마는 어쩌니. 멀쩡한 아들이 갑자기 집을 나가 뉴질랜드에서 자살하다니…. 학부형보단 아기엄마쪽
입장인 나는 그래서 이렇게 대답했다. 인우 와이프는 또 어쩌니. 아기도 어린데 멀쩡한 신랑이 갑자기 집을 나가 자살하다니…. 이야기는 영원한
사랑쪽으로 흘렀다. 나야 자신없지만 그래도 참 아름답더라. 그런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정말 운이 좋은 것 같아. 아무나 그런 사랑
하니. 나는 대답했다. 그런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정말 무책임한 것 같아. 너무 민폐를 끼치잖니. 주위 사람들은 어쩌란 말야.
7. 감독은 “천명이 보면 천명
다 느낌이 다른 영화”를 꾀했다고 하는데, 그 의도는 성공한 것 같다. 영화를 보고는 많은 사람들에게 느낌을 물어봤는데 다들 달랐던 것이다.
그리고 같은 사람 안에서도 느낌은 단일하지 않았다. 나만 해도, 그런 사랑의 존재를 믿진 않지만 지독한 사랑의 황홀한 내음을 맡은 건 사실이니까.
8. 이 영화는 얼마나 다양한 느낌을
주는고하니, 지금 내 머릿속엔 이런 생각까지 든다. 사실 내가 지난주에 이어 이번주에도 이 코너를 쓰게 된 것은 최 아줌마가 갑자기 설악산으로
사라졌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전직 편집장이고 취재팀장이었던 잡지의 마감을 접어두고 함께 놀러가는데, 어떤 사람은 땜빵 마감에도 마음
졸이며 뒷설거지를 하고. 같이 근무하던 당시에도 시녀 비슷했던 나는, 이 두분이 전생에도 나의 상전이 아니었을까, 다음 생에도 혹시 그렇게
태어나게 돼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드는 것이다. 이쯤되면 <번지점프를 하다>는 천인천색의 영화가 아니라 천인만색의 영화라고 해도
될 듯하다.
오은하/ 대중문화평론가 oheunha@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