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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번의 빅뱅을 기다리며
송경원 2015-09-16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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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립형 블록버스터

장르에서 시리즈로, 시리즈에서 프랜차이즈로, 할리우드 스튜디오는 항상 안정적인 속편을 갈망해왔다. 마블이 선보인 시네마틱 유니버스는 개별 시리즈가 하나의 세계관 안에서 합종연횡하는 새로운 차원의 프랜차이즈 모델을 제시했다. 페이즈2의 대미를 장식한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은 단단하게 응집한 개별영화라기보다는 각 히어로들의 개별 영화의 주요 시퀀스 조각들을 효율적으로 조립한 거대한 장난감처럼 보인다.

대개 속편은 성공한 테마에 대한 질척거림과 볼품없어도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중독성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생명을 부지한다. 특히 블록버스터 속편들은 전작의 흥행에 힘입어 어떻게든 ‘말이 되게’ 이야기를 이어가려 애쓰곤 한다. 1편 안에서 완성되고 이미 마감된 이야기에 심폐소생기를 들이대다 보니 무리수도 많고, 시리즈가 쌓여갈수록 허점도 늘기 마련이다. 007처럼 각 편의 연결이 다소 헐거운 시리즈는 개별 영화의 개성이 도드라지는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속편은 그 수에 비례해 밀도가 떨어진다. 이미 생명력이 다한 DNA를 무한복제하며 활력을 잃어가는, 그래도 차마 놓을 수 없어 직접 확인하고서야 실망하는 과정의 반복. 블록버스터 속편에 대한 기억은 ‘뻔하지만 미워도 다시 한번’이었다.

2000년 초•중반을 장식한 <반지의 제왕>과 <해리 포터> 시리즈는 안정적이고 믿음직한 프랜차이즈의 표본이라 할 만하다. 억지로 잡아 늘인 게 아니라 애초에 그렇게 구성된 긴 원작을 바탕으로 해 파트당 알맞게 쪼개놓은 덕분에 개별 작품으로서의 완성도와 완결성을 어느 정도 보장하면서 동시에 속편으로서의 연속성까지 확보할 수 있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 프랜차이즈가 마블 코믹스가 구축한 시네마틱 유니버스, 속칭 ‘어벤저사이징’(Avengersizing)이다. 슈퍼히어로영화는 항상 속편의 불안에 시달리는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에 있어 새로운 금맥의 발견이었다. 코믹스의 확장 방식을 벤치마킹한 마블식 프랜차이즈는 각 영웅들을 하나의 통합된 세계관 안에 묶어, 따로 또 같이 활약할 수 있도록 관계의 그물망을 짠다. 종횡으로 연결된 이야기 속에서 각각의 캐릭터를 구축하는 이 새로운 방식은 확장성만큼은 가히 프랜차이즈의 끝판왕이라 할 만하다.

약간의 과장을 보태자면 <어벤져스> 시리즈는 한편의 독립적인 영화가 아니라 적어도 이중 하나는 걸리겠지 하는 심정으로 각종 요소를 구겨넣은 코믹스 총집합이다. “오로지 코믹스에서 시도된 재미있는 스토리텔링 방식에서 출발”했다는 제레미 레첨 프로듀서의 말처럼 재미있는 이야기의 확장을 기치로 내건 마블의 방식은 종래 어떤 프랜차이즈보다 안정적이고 견고한 브랜드를 탄생시켰다. 물론 종합선물세트식 구성은 최대 다수의 관객 만족을 지향하는 블록버스터의 오래된 습관이다. 다만 한편의 영화의 완결성을 어디까지 추구하느냐 하는 점에서 기존 프랜차이즈와 <어벤져스> 시리즈는 결정적으로 차이가 난다.

하나를 위한 전체, 전체를 위한 하나

기존 시리즈물은 극단적으로 말해 다음편을 기약하지 않는다. 매번 이번 영화가 마지막인 양 상상 가능한 모든 물량을 쏟아붓고 집중한다. 그렇게 이미 다 끝난 이야기를 필요에 의해 되살리려 애쓰다보니 점점 활력이 떨어지는 문제에 부딪친다.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이하 <에이지 오브 울트론>)은 반대다. 마블 유니버스에 소속된 영화들은 애초에 구상한 거대한 세계관이 ‘말이 되도록’ 각 요소들을 쌓아올리는 데 방점을 찍고 있다. 시리즈 전체에 필요한 정보제공을 위해서라면 개별 영화의 흐름을 다소 방해한다고 하더라도 과감히 넣는다. 예를 들어 인피니티 스톤에 관한 장황한 설명은 사실 본편과는 큰 상관이 없는 밑그림이다. 그런데 마블 유니버스를 열심히 따라가는 팬들이 재미를 느끼는 건 다름 아닌 이 밑밥들을 연결해 도달하는 거대한 세계관이다. 개별 영화들의 이음매 역할에 불과한 사소한 이스터 에그들이 단순한 양념을 넘어 때론 본편의 내용보다 중요한 취급을 받는 역설. 파면 팔수록 나오는 팬들을 위한 서비스. 한편으론 그래서 매력적이고, 다른 한편으론 그래서 본편이 산만하고 헐겁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영화 속 가장 화려한 전투 장면에 해당하는 헐크와 아이언맨-베로니카의 대결도 마찬가지다. 이 장면의 1차적인 기능은 선망하던 캐릭터들간의 꿈의 대결이다. 대결 이후 헐크- 정확히는 어벤져스팀을 바라보는 공포에 질린 대중의 시선은 시리즈 전체의 핵심을 관통하는 힘 있는 장면이다. 그게 문제다. 힘에 의한 평화의 추구,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의 대립, 파시즘에 대한 질문은 <어벤져스>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테마지만 엄밀히 말해 <에이지 오브 울트론>의 방점은 아니다. 적어도 <에이지 오브 울트론>은 어벤져스와 울트론의 대결이 메인 이벤트가 되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는 후반부 클라이맥스에 이르기까지 사족이 지나치게 많다. 물론 개별 시퀀스 자체는 대체로 재미있다. 히어로들의 각기 다른 고뇌와 상황을 설명하고 캐릭터를 풍성하게 해준다.

문제는 헐크 대 아이언맨 같은 ‘지나치게 재미있는’ 시퀀스들이 온전히 이번 영화의 서사에 소속된 느낌이 아니라는 점이다. 헐크와 아이언맨의 대결만 해도 전반부에 그토록 화려한 대결을 펼쳐놓으니 상대적으로 후반부 울트론과의 대결이 맥이 빠져버리는 게 사실이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은 잘 만든 블록 조각들을 적당히 쌓아올린 듯 개별 영화로는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다. 대신 전편의 떡밥을 회수하거나 이후 등장할 속편을 위한 설명에는 충실하다. 120분짜리 예고편 같다는 비난을 받았던 <아이언맨2>처럼 <에이지 오브 울트론> 역시 태생적으로 한편의 영화로서 단단한 구성보다는 영화 바깥으로의 유기적인 연결에 좀더 신경을 쓰는, 조립식 블록버스터다.

팽창의 끝에서 또 한번의 빅뱅을 기다리며

<어벤져스> 시리즈의 성공적인 안착에는 몇 가지 비결이 있다. 첫 번째는 물론 단일 영화를 넘어서는 캐릭터의 구축이다. 여기에 <토르>=클래식과 판타지, <캡틴 아메리카>=스파이물 등 개별 히어로 시리즈마다 특색 있는 장르와 융합시켜 각 시리즈를 특화한 점도 프랜차이즈에 활력을 더한다. 제각각 개성을 자랑하는 히어로들을 통합해 절묘하게 균형을 맞춰낸 앙상블 역시 칭찬할 만하다. 하지만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페이즈2를 마감하는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 이르니 이야기의 부피는 단일 영화로는 감당하기 힘들 만큼 불어나버렸다. 적절한 액션 시퀀스와 캐릭터 배분 등 이번 작품은 상향평준화된 슈퍼히어로 장르의 아슬아슬한 균형점의 끝에 서 있다. 이번에는 다소 버거워도 균형을 잘 맞췄지만 더이상 새로운 캐릭터나 관계망이 비집고 들어갈 틈은 없어 보인다. 다음 작품이 궁금하도록 만드는 게 속편의 미덕이라면 <에이지 오브 울트론>은 이제 ‘답이 정해져 있는’ 시리즈가 되어버렸다. 여느 속편과는 또 다른 점에서 시리즈의 활력이 서서히 가라앉고 있는 느낌이다.

슈팅이나 격투 등 장르가 분명한 게임이 시리즈를 거듭하다 보면 딜레마에 빠지는 순간이 온다. 기존 팬들을 만족시키려고 난이도를 높이자니 진입 장벽이 높아져 새로운 팬의 유입이 어려워지고, 장벽을 낮춰 쉽게 접근하자니 기존 팬들에게 실망감을 안길 우려가 있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가 구축한 7년 성과의 정점 혹은 기로에 서 있는 것 같다. 새로운 요소들을 첨가하자니 이미 깔아놓은 떡밥이 적지 않아 한편 안에 소화하기엔 볼륨이 지나치게 커져버린 감이 있다. 그렇다고 기존의 캐릭터와 벌여놓은 일들만 수습한다면 이내 식상해질 게 분명하다. 이보다 좋을 수 없는 지휘를 선보인 조스 웨던 감독이 떠나간 지금, ‘어벤져스’라는 블록을 멋들어지게 조립해줄 다음 기술자가 나올 것인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팽창은 어쩌면 올해 자신들의 물리적 한계를 확인한 건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미 이 프랜차이즈에 매료된 팬으로서, 페이즈3에서 다시금 새로운 빅뱅을 기대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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