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기분 나쁘게 만드는 데는 일가견이 있는 일본의 소설가이자 요괴전문가 교고쿠 나쓰히코의 <있어 없어?>는 그림책이다. 그의 ‘교고쿠도’ 시리즈를 한권이라도 읽어본 사람이라면 이런(!) 사람이 그리는 그림책이라니 안 봐도 알 만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 시리즈의 충실한 독자인 나는 어두운 방 안에서 위를(위의 무엇을?) 보고 있는 표지만으로도 일년치 오싹함은 다 느꼈다. 나카다 히데오의 공포영화 <여우령>에 등장하는 끝이 어두컴컴한 나무 계단을 보며 느낀 의미불명의 공포감 같은 것이다. 거기 뭐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느낌이 좋지 않다. 그런데 그 맛에 읽는다. 한 소년이 할머니 댁에 살게 되었다. 낡고 오래된 집이다. 나무로 지었고 바닥은 마루와 다다미다. 천장은 높고 기둥은 굵다. 높은 대들보 위 어둠이 신경쓰인 소년은 위를 자꾸 올려다보았다. “창문 옆에 화가 난 아저씨의 얼굴이 보였다. 엄청 무서운 얼굴이었다. 눈을 떼지 않고 계속 나를 봤다.” 이 장면에서 책은, 그 아저씨의 얼굴을 보여주는 대신 소년의 얼빠진 얼굴을 화면 가득 보여준다. 그 위에 뭐가 있는 것일까?
‘무서운 그림책’ 시리즈는 세권이 먼저 출간되었다. 일반 그림책처럼 크고 올 컬러에 얇지만 컨셉이 ‘무서운’이고, 글작가들의 면면도 화려하다. 미야베 미유키, 교고쿠 나쓰히코, 온다 리쿠가 첫 세권의 글작가들이다. 내용에 걸맞게 그림작가들이 선정되었다. 미야베 미유키의 <나쁜 책>은 한 곰인형의 자기소개로 시작한다.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나쁜 책입니다.” 세상의 많은 것을 이미 보아버린 어른은 곰인형의 자기소개만으로 <사탄의 인형>과 <토이 스토리>가 적절하게 혼합된 오싹함을 또다시 느끼고 만다. 이야기를 펼쳐보면 이 얇은 책, 몇 안 되는 글자에 불쾌감과 두려움이 피어오르는 원인이 바로 ‘상상력’임을 새삼 알게 된다. 온다 리쿠의 <거울 속>은 벌써 제목만 봐도 느낌이 오지 않는가? 거울이 많이 등장한다, 너무 많이….
이 시리즈의 기획자인 히가시 마사오의 말에 따르면 “어릴 때부터 무서운 이야기와 친숙해짐으로써 아이들은 풍부한 상상력을 배양하고, 뜻밖의 사태에 직면해서도 냉정을 유지할 수 있는 강한 심성을 키울 수 있습니다”라는데, 글쎄다. 무서운 이야기를 좋아하는 어린이였던 나는 읽은 것을 악몽으로 반복해서 꾸고, 세상을 불신하고, 조용한 집을 싫어하고, 어두운 숲을 싫어하게 되었을 뿐인걸. 무서운 이야기를 좋아하는 어른이 무서운 그림책을 기획하는 데는 그럴듯한 핑계가 필요했나보다. (웃음) 첫장을 펼치면, ‘무서운 이야기구나’ 싶은데 멈추지 못하고 계속 읽을 수밖에 없다. 궁금하니까. 호기심은 고양이를 죽이고 또한 독자를 불면의 밤으로 이끄는 법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