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0년, 대지진과 화산 폭발로 붕괴된 부산 해운대. 홀로 마약을 팔며 거리생활을 하는 소녀가 있다. 고래와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소녀 하진은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 고래를 잡은 엄마에 대한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외팔이 여해적 상원은 그녀에게 화산고래를 잡으러 가자고 제안한다. 처음엔 삐딱하던 하진은 또래 항해사 이안, 폭약 담당 재형, 작살잡이 텐진, 총잡이 안드라로 구성된 해적단에 마음을 열어간다. 배는 화산섬에 다다르고, 이들은 폐허가 된 섬의 화산고래와 마주한다.
회색빛 도시와 붉은 용암, 거대한 고래의 이미지가 근사하게 어우러지는 작품. 근미래의 디스토피아를 배경으로 화산, 고래를 엮어낸 구상이 매혹적이다. 캐릭터의 매력도 충분하다. 까칠하지만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소녀 하진과 그녀를 이끄는 우아한 해적 상원의 캐릭터는 흥미롭다. 영화는 강해 보이는 두 여성이 각자의 트라우마를 마주하고 극복하는 법에 대해 파고든다. 서사를 풀어나가는 대목에서 영화는 문제에 봉착한다. 친구처럼 지내던 고래를 잡도록 이용한 엄마에 대한 하진의 트라우마와 남편을 앗아간 화산고래에 대한 상원의 트라우마는 접점을 찾기 어렵다. 그러나 그녀들의 트라우마는 화산고래에게 작살을 꽂는 순간, 하나로 엮이며 해소되어버린다. 서사의 축을 이루는 두 캐릭터의 목적과 극복 방식의 아귀가 맞지 않는 것이다. 서사의 결정적인 대목을 풀어나가지 못한 아쉬움은 있지만 대중적인 그림체와 이야기 구조로 상업애니메이션으로서의 가능성도 엿보인다. 한국영화아카데미 장편제작연구과정 애니메이션 5기 작품으로, 제19회 몬트리올국제판타지아 영화제에 초청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