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3학년 때였나, 아빠 회사에서 발행하던 사보에 내가 쓴 일기가 실린 적이 있다. 그 페이지를 스크랩해둔 아빠 덕분에 얼마 전 추억의 책장을 넘기듯 그 스크랩북을 넘기는데 열살이던 내가 남긴 몇 구절이 뭐랄까, 짠한 뒷맛을 남겼다. “내일은 눈이 펑펑 안 왔으면 좋겠다. 내일은 얼음이 꽝꽝 안 얼었으면 좋겠다. 아빠가 자전거 타고 회사에 가다 미끄러질 수도 있으니까. 그럼 아빠가 엄마한테 월급봉투 못 갖다줄 거니까.” 때이른 조숙이 애어른을 만들었나, 돈이라는 것이 몸에서 땀을 내야 벌린다는 걸 꽤 일찌감치 알아버린 나는 그만큼 돈이 무섭다는 사실 또한 모르지 않아 대학에 들어가던 그해부터 닥치는 대로 온갖 아르바이트를 해댔다. 무엇보다 내겐 특별한 의미에서의 가욋돈이 필요했다. 글을 쓰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되도록 남이 쓴 글을 많이 읽어야 득이 됨이 당연한데, 책이란 것이 고전은 고사하고 하루가 멀다하고 신간 속에 섞여 나오니 서점 들락거리기가 내겐 방과 후 과외 수업이나 다름없었으니 말이다.
물론 책 안 사는 걸 자랑으로 아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러나 내게 책은 사야만 하는 종이였고, 밑줄을 맘껏 그어야 직성이 풀리는 페이지였고, 내 눈높이에 맞춰 내 식대로 책장에 꽂을 수 있는 내 의지의 산물이기도 했다. 그러니 따지고 보면 책은 곧 돈이 아니던가.
제 이름을 달고 책이 되는 글 앞에서 부끄럼을 타고 겸손해지는 건 아마 대다수 글쟁이들이 웅숭그려 잡는 기본자세일 것인데, 그런 우리 앞에 까짓것 당신들 글이 무슨 대수겠어? 라는 식의 태도를 보인 한 주간지와 부닥쳤다. 사진 넉장에 족히 30매나 되는 원고를 청탁해놓고도 나온 잡지를 보내줄 수 없으니 지하철 가판대에 가 직접 사보라던 주간지였다. 황당하기 이를 데 없었지만 나는 잡지를 샀고 다음호 원고를 보냈다.
문제는 그 다음날이었다. 점심을 먹고 있는데 전화 한통이 걸려왔다. 편집장님이 새로 오셨는데 잡지 취지와 원고가 맞지 않는다고 빼자고 하시네요. 그런데 잡지에 안 실리니 원고료는 지급해드릴 수가 없어서요. 나는 사발에 담갔던 젓가락을 빼고 담당 기자에게 문자 한통을 보냈다. 나는 이제나저제나 그 편집장이 사과의 제스처를 취하지 않을까 기대를 했던 것도 같은데 그로부터 벌써 두달이나 흘러갔다. <사과는 잘해요>란 이기호 작가의 소설을 사서 보낼까 한다. 그는 내가 아주 소심한 방식의 자잘한 복수에 능하다는 걸 아직 모르는 모양인데 내 특기 중 하나가 다트에 미운 놈 사진 붙여놓고 화살 던져 꽂기다. 잘못 했을 때는 있죠, 미안합니다, 하고 이해를 구하면 되는 겁니다. 그게 윤리입니다. 그러고보니 이 당연지사를 행하고 사는 본보기가 이 나라에 없어서 이 사회가 요런 ‘쌩’까기에 익숙한 모양이다. 머리 숙이는 어른이라… 없다면 별수 있나, 나부터 연습할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