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잡지가 정말 잘 팔리던 때가 있었다. 특히 일본의 만화판이 그랬는데, 일본의 만화출판사 직원과 어쩌다 이야기할 일이 있으면 이만저만 놀라운 게 아니다. 만화잡지가 150만부를 찍던 시절 이야기다. 일본만화판뿐은 아니었을 것이다. 지금은 인쇄매체의 황혼기다. 한국 영화잡지판을 비롯해 문화잡지계가 좋았던 시절이 있었고, 인상적인 사진이 실린 표지들로 말이 필요 없는 메시지를 전세계에 전달하던 미국 잡지의 호시절이 있었다.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를 본 전•현직 잡지계 종사자들이 눈물을 훔쳤던 건 그런 이유에서다. 으레 잡지 한두권쯤 정기적으로 챙겨보던 때는, 지났다. 만화 <중쇄를 찍자!>에도 그런 풍경이 나온다. 1년 매출 예상계획표를 제출해야 하는 만화잡지 편집장은 이런 생각을 한다. “이상하네~ 내가 말단이던 시절의 편집장은, 대충 어림잡아서 A4 용지에 손으로 적당히 써서 냈는데… 누구보다 늦게 출근해서 누구보다 빨리 퇴근하고! 해뜰 때까지 술이나 퍼마시고! 그런데도 잡지는 미친 듯이 팔렸지! 지금은 완전 반대야! 어째서 이런 시대에 편집장이 되어버린 거야아아아!” 그런 생각은 나도 한다. 내가 처음 잡지에서 일을 시작한 15년 전과 지금을 비교하면, 그때는 여러 의미에서 신선놀음 같은 데가 있었다. 그때도 망하는 잡지가 많았지만, 새로 생기는 잡지가 더 많았다. 새로 매체가 생길 때마다 이직 제안을 받았다.
<중쇄를 찍자!>는 이렇게 호시절 다 지난 만화잡지사에 편집자로 취직한 쿠로사와의 이야기다. 그녀는 원래 유도선수였지만 부상으로 유도를 그만두고 어렵사리 만화편집부 막내로 일을 시작한다. 그간 하던 일과 지금 하는 일의 괴리가, 쿠로사와를 특별하게 만든다. 능숙하지 않지만 그녀에게는 다른 관점이 있다. 어쩐지 일본 만화잡지사를 배경으로 한 <미생> 같은 인상이랄까. 제목 ‘중쇄를 찍자’의 ‘중쇄’는 초판을 다 소화하고 추가로 인쇄에 들어간다는 뜻으로, 팔리는 만화를 향한 신입사원의 고군분투가 만화의 주요 내용. 그 과정에서 배워가는 것은 옛날 ‘좋던 시절’이 막을 내리면서 작가부터 출판사 직원까지 어떤 일을 겪었는가를 포함한다. 그리고 바뀐 세상에 적응하려는 노력도. 예컨대 경쟁사에서 스타 작가의 연락처를 어떻게 알아냈는지 직접 만나 포섭을 시도했다. 과연 연락처는 어떻게 새어나갔을까? 페이스북이다. SNS가 인맥과 홍보의 주요 창구가 되자 쿠로사와의 회사에서도 SNS 적극 활용 방안을 모색한다. 쿠로사와가 일을 배워가는 과정을 따라가며 웃고 찡그리게 되는 게 같은 업계 사람으로서의 공감이긴 한데, 현실은 만화 속 쿠로사와의 나날보다 가혹한 게 사실이다. 어째 허리를 두들기며 한숨을 쉬게 되지만, 만화는 참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