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가장 인상 깊은 영화 관객과의 대화(GV) 질문 중 하나. 지난해 학교폭력을 다룬 내 영화 <야간비행>을 베를린에서 상영할 때였다. 20대로 보이는 한국인 관객이 손을 들고 이런 질문을 했다.
“한국의 내부 문제를 이렇게 외국인들에게 보여주면 한국에 대한 인상이 나빠질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 순간 대충 얼버무리며 넘어갔지만, 입천장에 맴도는 문장은 이랬다. ‘맙소사, 국뽕이다.’ 외국인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만든 영화도 아니지만, 아이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 입시지옥과 학교폭력을 외면한 채 내세우는 국가 이미지란 대체 얼마나 위선적인가. 저 위선의 애국심을 다른 나라에 와서 20대 젊은 청년의 입을 통해 대면해야 하나 싶어, GV가 끝나고도 한참을 심란했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1년 반가량이 지난 오늘밤, 기이하게도 ‘헬조선’이라는 유행어와 마주앉아 있다. 1년 반 사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어느 순간 헬조선 사이트가 만들어지고, SNS에선 헬조선이 가장 트렌디한 단어가 됐다. 심지어 이 흐름에 가장 경멸의 언어로 전락한 게 ‘국뽕’이다. 희망의 끈이 모조리 불타버린 불반도 지옥에서 애국심을 가지라는 말은 그저 위악적인 꼰대짓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헬조선, 불반도 지옥, 망한민국, 동방역병지대…. 2030세대가 지금 한국을 지칭하는 키워드들이다. 자신들의 처지를 ‘잉여’라고 호명하던 청년들이 이제는 ‘헬조선’이란 이미지를 통해 울분과 절망을 형상화하고 있다. 절망의 농도가 한층 심화됐다.
세월호 참사, 메르스 사태라는 총체적 무능, 그리고 이 와중에도 ‘아몰랑’으로 일관하며 올드보이들을 중요 관직에 앉히는 데만 골몰하는 자폐적인 박근혜 정부를 경유하며 정상국가의 붕괴를 목도했을 터다. 여기에 최악의 청년실업, 비정규직, 열정페이, 갑질의 횡포, 점점 심화되는 부의 대물림 등 청년들이 삶에서 누릴 ‘기회들’이 아예 차단되거나 일상적으로 위협당하고 있다.
상황이 이럴진대 꼰대들의 제 잘난 잔소리는 끝날 줄을 모른다. 보수 꼰대는 “‘노력’은 해봤니?”, 진보 꼰대는 “청년들이 깨어나야 한다” 등. 도처가 지뢰밭이고, 사방이 유황불이다. ‘조용한 아침의 나라’는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양면의 역동성을 지녔던 ‘다이내믹 코리아’를 거쳐 이제 청년들에게 ‘헬조선’으로 현상되고 있는 것이다.
금수저가 지배하는 나라에서 똥수저 아이를 낳을 수 없다, 해외 이민으로 ‘탈조선’을 감행하자, 죽창 앞에선 모두가 평등하다, 예컨대 ‘헬조선’은 스스로 정체성을 난민화한 2030세대의 비명에 가깝다. 삶의 장소에 대한 지독한 부정과 냉소가 바로 난민이다. 한국은 어느새 청년들이 ‘헬조선’이란 단어를 통해 자기정체성을 난민화하는 사회가 돼버렸다. 이 데카당스를 극복하지 못하면 미래는 결코 도착하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