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조종국 <씨네21> 편집위원
<용서받지 못한 자>는 2005년 육군에 촬영협조를 구할 때 냈던 시나리오와 다른 내용을 찍었다고 감독을 고발하는 등 논란이 일었다. 군 당국이 ‘지원조건’을 아주 좁고 경직되게 적용해서, 일방적으로 협조 여부를 결정한 탓에 생긴 부작용이었다.
최근 한 영화 제작진은 군 당국에 촬영협조 요청을 했다가 일언지하에 거절당했다. 군이 관리하는 특정 건물에서 잠깐 촬영할 수 있게 해달라는 요청이었지만 말을 붙이기도 어려웠다고 했다. “<연평해전>처럼 군 홍보에 직접 도움되는 영화가 아니면 협조하기 어렵다.” 군 관계자의 대답은 단호했단다. 근래 수년 사이 제작된 군 관련 영화는 여러 편이지만 군 당국의 적극적인 협조나 지원을 받은 영화는 거의 없다.
으레 거절을 당하니 협조 요청도 잘 하지 않을뿐더러 어쩔 수 없이 지원 요청을 해도 정작 필요한 지원은 기대하기 어렵다고 한다. “공군 관리 부지, 육군 전차 훈련장 등 모두 거절당했고, 포 관련 자문만 해줄 수 있다고 했다.” 전투 장면을 찍은 한 스탭의 전언이다. <명량>은 해군과 협의 과정에서 시나리오 수정 요구를 받고 기대를 접었던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제작 일선에서는 군의 지원이나 협조를 제대로 받은 영화는 <연평해전>이 유일하다고 입을 모은다.
오버랩되는 장면 하나. ‘국방부 장관과 강우석, 강제규 감독 등 영화인들,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 등이 간담회를 갖고 군 관련 영화 촬영지원 방안을 적극 모색하기로 했고, 영화인들은 육•해•공군 및 해병대 정훈실장까지 면담해 실무를 논의할 상시기구까지 마련하기로 뜻을 모았다.’ 먼 미래의 가상 상황이 아니다. 무려 13년 전인 2002년 8월29일에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국방부는 그해 11월 ‘민간영화 제작지원 지침’(‘정훈•문화활동 훈령’으로 개정, 지금은 ‘국방부훈령 제1725호/2014.11.28’로 시행 중)을 만드는 등 후속 조치도 순조롭게 이어나갔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군 당국이 첫 지원 신청작이었던 <태극기 휘날리며>의 일부 장면을 수정하라고 요구해 제작진과 갈등을 빚다가 유야무야되고 말았던 것이다.
당시 국방부 장관까지 나서서 그렇게 열의를 보였으니 지금쯤은 원활한 군의 지원을 기대할 수도 있겠지만 영화계가 체감하는 현실은 영 딴판이다. 군과 이런 일을 주선하고 체계를 만드는 일도 당연히 영화진흥위원회가 나서야 할 일이다. 최근 남북의 일촉즉발 대치상황을 들먹이며 군에 영화 촬영지원이나 하라는 게 한심한 일 아니냐고 열을 내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난 5월 국방홍보원과 ‘한국영화 및 영상문화 보급 확산, 군 장병 정서 함양을 위해 협력하기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고 홍보하는 영화진흥위원회는 한심할 뿐만 아니라 구차해 보이기까지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