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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재되어 있던 A급 첩보요원의 본능이 깨어나다 <아메리칸 울트라>
장영엽 2015-08-26

1950년대, ‘MK 울트라 프로젝트’라 불리는 실험이 있었다. 냉전시대 미국과 소련이 자국의 나라에 잠입한 스파이들의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환각을 일으키는 약물을 사용한 것이다. 문제는 그들이 부랑자나 헤로인 중독환자 등 일반인들에게까지 이 약물을 사용했다는 점이다. 약물을 통해 일반인을 최상의 자질을 가진 스파이로 키워내겠다는 첩보국의 야심은 물론 실패했다.

이 실험에 동원된 많은 사람들이 한계를 이겨내지 못하고 정신이 붕괴되거나 사망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아메리칸 울트라>는 이러한 냉전시대의 비극적인 실화로부터 모티브를 얻어 제작된 영화다. 어딘가 나사가 살짝 풀린 것 같은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마이크(제시 아이젠버그)가 주인공이다. 그는 어느 날 갑자기 편의점으로 찾아와 자신의 눈을 보며 이상한 주문을 반복하는 여자를 만난 뒤, 스스로도 몰랐던 놀라운 모습을 깨닫게 된다. 무기가 없어도 살인자에 맞설 수 있는, A급 첩보요원의 자질이 그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던 것이다. 한편 CIA를 장악한 요원 예이츠(토퍼 그레이스)는 과거의 실패로 폐쇄된 울트라 프로젝트의 생존자인 마이크를 제거하려 하고, 마이크는 엉겁결에 사랑하는 연인 피비(크리스틴 스튜어트)와 함께 그들에 맞서게 된다.

돌발적으로 일어나는 이 영화의 수많은 사건들 사이에서 개연성과 논리를 찾기란 불가능하다. 전작 <프로젝트 X>(2011)에서와 마찬가지로 니마 누리자데는 일견 사소해 보이던 사건을 걷잡을 수 없이 확장해 광란의 소동극으로 마무리하는 데 그 장기가 있는 것 같다. 그 속에서 디테일한 의미를 찾기보다 캠프파이어같이 한순간 불타오르고 마는 재미를 누리는 데 이 영화의 목적이 있다. <어드벤처랜드>(2009) 이후 다시금 함께 출연한 크리스틴 스튜어트와 제시 아이젠버그의 병맛 커플 연기는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특히 살인자들의 추적을 피해 갱단의 거처로 몸을 숨긴 이들이 야광 불빛 아래서 허둥지둥하는 대목이 압권. 한때 뱀파이어 로맨스 블록버스터의 히로인이기도 했던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야광 불빛 아래서 추레한 몰골에 하얀 이만 드러내고 서 있는 장면은 니마 누리자데의 독특한 유머 코드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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