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른한 한여름 오후의 이발소 안. 콧수염 사내가 의자에 앉아 면도를 기다리고 대머리의 뚱뚱한 이발사가 면도칼을 가죽띠에 갈면서 주저리주저리 이야기를 한다. “옛날 만화들 얼마나 좋았어요? 박기정의 <오빠생각> <기러기> 아! 요샌 그런 만화가 없어요.” 이명세 감독의 영화 <개그맨>의 한 장면이다. 극장에서 영화를 보던 나는 어두컴컴한 만홧가게의 한구석에서 <오빠생각>을 읽으면서 눈물, 콧물을 줄줄 흘리던 초등학교 4학년 때를 생각하고 웃었다.
겨울방학이 되어 용두동으로 이사를 간 친할머니 집으로 놀러갔다. 밤늦게 사촌 형이 들어왔는데 그는 시멘트 포대로 둘둘 만 뭔가를 옆구리에 끼고는 다락방으로 올라갔다. 나는 사촌 형이 시멘트 포대로 숨겨가지고 온 그것이 뭔가 대단한 것임을 눈치챘다. 스무살이 넘었는데도 취직도 못하고 낮 동안에는 빈둥빈둥 당구장과 극장을 배회하다가 밤늦게 돌아오는 백수건달 사촌 형은 어린 나를 소 닭 보듯 하거나 귀찮아했었지만 모범적이고 건전한 외가쪽 삼촌들과는 차원이 다른 어두컴컴하지만 뭔가 흥미진진한 세계로 나를 데려가주곤 했다. 삼촌들은 방학 때가 되면 만화영화 또는 명화라 일컫는 영화들을 극장에서 보여주었지만 어린 내가 보아야 할 것 또는 데리고 갈 곳의 선을 항상 지켰다. 그러나 사촌 형은 아무 생각 없이 나를 데리고 다녔다. 담배 연기가 자욱한 당구장에 어린 나를 두어 시간씩 방치해놓고 친구들과 당구를 치면서 낄낄거리며 노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미성년자가 보아서는 절대로 안 되는 피비린내가 나는 <암흑가의 황제> 같은 잔인한 갱영화를 초등학교 1학년에게 보여주면서도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이었다. 다음날 아침 사촌 형이 당구장으로 놀러나가자마자 나는 사촌 형의 다락방으로 올라갔다. 과연 시멘트 포대로 둘둘 말아서 숨겨온 물건은 대여섯권의 무협지와 만화책 몇권이었다. 그때 박기정의 만화를 처음 만났다. 사촌 형은 박기정 만화의 팬이어서 그의 신간 만화가 나오면 곧바로 빌려오는 것이었다. 며칠 후 큰 인심 쓰듯, 사촌 형은 나를 데리고 만홧가게에 갔다. 용두동의 하천 둑 아래에 콜타르를 바른 시꺼먼 판잣집들이 늘어선 골목에 만홧가게가 있었다. 나는 세상에 태어나서 그렇게 큰 만홧가게에 처음 가보았다. 게다가 만홧가게 안에서 어묵과 튀김, 과자까지 팔다니! 신세계였다. 내가 사는 동네의 만홧가게들이 구멍가게라면 여기는 거의 대형마트 수준이었다. 게다가 어마어마한 양의 만화책들이라니.
용두동 만홧가게 ‘명예의 전당’
주인아저씨가 앉아 있는 계산대 앞에는 반짝반짝 빛나는 신간 만화들이 좌판에 놓여 있고 그 옆에는 모락모락 김을 내는 어묵국물과 튀김, 과자 좌판이 있고 그 너머에 대단한 것이 있었다.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만화 책장이었다. 보통의 만홧가게들은 벽면에 책 받침대를 만들어 만화책의 앞 표지가 잘보이게 세워놓고 고무줄로 가로질러 책이 쓰러지지 않게 진열해놓는데, 이 벽의 책장에는 만홧가게 주인이 특별히 선별한 만화책들을 박카스 상자 종이로 덧씌우고 철사로 묶어 다시 제본을 하고 붓글씨로 만화 제목과 저자를 써놓은, 말하자면 만홧가게 주인의 정성이 들어간 컬렉션이자 명예의 전당이었다. 더 대단한 것은 10여년 전에 나온 만화들 중 세월을 이겨낸 걸작들이 그곳에 모두 모여 있다는 것이다.
임창의 <땡이> 시리즈와 산호의 <라이파이>는 물론이고, 권웅의 <북진천리>, 군인들과 기관총을 멋지게 그렸던 이근철의 전쟁만화들과 <방랑의 왕자>가 꽂혀 있었고, 박기정의 만화 <도전자> <레슬러> <우야꼬> <폭탄아> <황토바람>이 전권 모두 꽂혀 있었다. 내가 <황토바람>을 집어들자 사촌 형은 그건 내가 이미 본 거야, 라며 이쪽 책꽂이의 만화들은 자신이 모두 본 것들이니 저쪽 벽에 진열된 만화를 고르라고 했다. 내가 보고 싶어 하는 만화들은 “그건 재미없어” 또는 “난 본 거야”라며 무시당했다. 결국 사촌 형이 고르는 만화들밖에는 빌릴 수가 없었고, 나는 혼자 와서 저 책장의 만화들을 모두 보리라 결심했다.
다음날 혼자서 용두동 천변의 만홧가게로 갔다. 술집 골목과 나병 환자가 있다는 음습한 빈민가 골목을 지나 만홧가게에 혼자 입성을 했지만, 오호 통제라 10원, 20원을 가지고 그 많은 만화들을 다 볼 수는 없었으니 순위를 정해 박기정의 만화들을 한권 한권 볼 수밖에 없었다. 명예의 전당에 모셔져 있는 만화들은 열권이나 스무권짜리 장편만화들이 대부분이어서 보고 싶어도 돈이 모자랐다. 명예의 전당 책꽂이 앞에 서서 수많은 만화들 중 뭘 먼저 보아야 할까 망설였지만 가장 먼저 손이 간 것은 박기정의 <황토바람>이었다. 제목이 너무나 근사한 1200여 페이지의 장편 만화였다. <황토바람> 1부 네권과 상하권짜리 박기정 만화 <오빠생각>을 골라 나무 의자에 앉아 읽기 시작했다. <오빠생각>은 서로 떨어져서 만날 수 없는 가난한 남매의 이야기였는데, 너무 서럽고 슬퍼서 창피한 줄도 모르고 철철 눈물을 흘리면서 책장을 넘겼다. 어른들에게 혼나거나 매를 맞고 울어본 적은 많았지만 예술 작품을 보고 운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물론 누선이 자극되었다고 해서 그 작품이 좋은 작품이라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 박기정 만화에는 독자의 심금을 울리는 연민이 있었다.
만주 벌판. 가뭄으로 땅은 쩍쩍 갈라져 있고 풀 한 포기 없는 황토바람만이 부는 가혹한 곳에 물을 길어나르는 일본군 병사들이 등장하면서 만화 <황토바람>은 시작된다. 이들은 일제에 강제징용된 조선인 병사들이다. 그들 중에 박기정 만화의 주인공 훈이가 있다. 호시탐탐 일본군에게서 도망칠 궁리만 하고 있던 그에게 탈출의 결단을 내려야 하는 날이 찾아온다. 박기정 만화의 단골 악역 시하메의 혹독한 폭력에 견디지 못하고 훈이 그를 밀어뜨렸는데, 그만 나무 기둥이 쓰러져 그 밑에 깔리고 만 것이다. 시하메를 죽였다고 생각한 훈이의 탈주극이 시작된다. 혼자 탈출하는 것이 아니다. 가뭄 때문에 굶어죽기 직전인 조선인 고아들을 데리고 도망쳐야 하는 것이다. 뒤에서는 복수를 다짐한 시하메와 일본군이 쫓고,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물도 식량도 없이 만주 벌판을 건너는 훈이 일행 앞에는 마적단이 득시글거린다. 마치 <매드맥스3: 비욘드 썬더돔>의 중반 이후 이야기와 비슷한 장대한 스토리였다. 투박하고 말이 없는 주인공 훈이와 그를 사랑하는 박기정 만화의 여주인공 미미, 그리고 끊임없이 말썽을 일으키는 두 소년 오동추와 뵤. 탈주라는 큰 스토리 라인 안에서 조연들이 벌이는 오해와 사건들이 아기자기하게 숨어 있다. 세월이 지난 후에도 잊히지 않는 인상적인 장면은 훈이 일행에게 잡혀 동굴 속에 감금된 마적단 부두목의 탈출 장면이다. 그는 동추와 뵤가 가져다준 음식을 거부하다가 동굴 속에 있는 쥐들을 보고 음식물을 잘게 씹어 자신을 묶은 로프 위에 뱉는다. 쥐들이 로프 위에 뱉어진 음식물을 먹으면서 로프를 갉아 끊어지게 할 속셈이었는데, 쥐들은 로프 위의 음식만 먹고 도망친다. 음식물이 로프 사이사이로 배어들지 않았던 것. 마적은 로프 사이로 음식물이 스며들어 쥐들이 로프를 갉아먹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음식물을 굳혀 탈출에 성공한다. 이런 에피소드들이 그의 만화를 재미있게 했다. 그런 점에서 재미있었던 만화는 <바다와 소년>이었다. 작가 자신이 어촌에서 살았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어촌의 생활이 상세하게 표현된 만화였다. 소년 훈이와 그의 친구 오동추와 뵤가 바다에서 행방불명된 아버지를 대신하여 배를 몰고 바다에 나가 물고기를 잡는데 화부인 오동추가 방금 잡은 오징어를 잘라 고추장을 넣고 얼큰하게 오징어국을 끓여 바다 위에서 식사하는 장면을 보면서 침이 꿀떡 넘어갔다. 선주의 어린 아들이 갓 잡아 공판장에 내놓은 게를 훔칠 때 신발 신은 발로 게를 약 올려 게가 집게로 신발코를 물면 슬금슬금 어른들 눈을 피해 구석으로 가서 불을 피워 게를 구워먹는다. 이런 작은 에피소드들은 소년들이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는다는 다소 황당한 설정에도 불구하고 만화를 재미있게 읽게 만들었다.
용두동 만홧가게의 명예의 전당에서 보고는 싶지만 총 45권이라는 어마어마한 권수에 질려 주머니 속의 동전만 헤아리다가 못 본 만화가 <도전자>였다. 다행이도 몇해 전에 복간되어 읽어보고는 깜짝 놀랐다. <내일의 죠>의 원작자 가지와라 잇키와 그림을 그린 지바 데쓰야가 박기정의 <도전자>를 보았을리 없겠지만, 외톨이 소년 야부키 죠의 원형이 1964년에 나온 <도전자>의 주인공 훈이에게 있었고, 스토리마저 유사했다(물론 표절을 말하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불량소년인 주제에 부잣집에 들어가 신분상승을 한 리키이시를 야부키 죠가 인정하지 않고 사사건건 시비를 걸 듯 훈이는 귀화를 한 친구 오동추를 일본인들보다 더 증오하고 그가 내미는 손길을 번번이 쳐내버린다. <내일의 죠>에서 죠는 한국인 복서와 대결을 한다(한국판에서는 한국인 복서를 타이인 복서로 바꿔 번역을 했다). 전쟁으로 인한 가난의 극한을 경험한 한국인 복서는 정신력에서 자신이 죠보다 우위에 있다고 한다. 그러자 야부키 죠는 가난의 문제가 아니라 가난뱅이 불량소년으로 차별받고 외톨이 생활을 한 자신의 투지도 만만찮다고 한다. <도전자>의 훈이는 일본에서 재일조선인으로 살며 온갖 박해와 음모에 의해 삐뚤어질 대로 삐뚤어진 고독한 주인공이다. 훈이의 고독은 야부키 죠의 고독을 뛰어넘는다. 자신과 마주치는 그 어느 누구에게도 거칠게 대하는 훈이라는 고독한 주인공은 오직 일본인을 때려눕히기 위해 권투를 한다. 만화를 읽는 내내 훈이의 외로움과 보상 없는 투지가 가슴을 아프게 한다. 이상무의 <독고탁-다시 찾은 마운드>의 레스토랑 종업원 에피소드도 <도전자>의 영향이 짙게 느껴져 놀랐다. 박기정의 주인공 훈이는 눈동자가 없는 눈이다. 펜을 아래위로 재빠르게 여러 번 그어 만든 눈이다. 어찌보면 괴상할 수도 있다. 주인공의 눈동자로 감정 표현을 할 수 없다는 것은 만화가에게는 큰 약점이다. 그러나 훈이의 눈동자 없는 눈은 그 무표정으로 인해 더욱 그가 고독한 존재라는 것을 표현한다. 아마 세상의 모든 만화 중 이런 눈을 가진 만화 주인공은 없을 것이다.
너무나 인기가 많았던 이 만화는 훈이와 일본인 의붓어머니와 다시 만나 화해를 하게 해달라는 독자들의 끊임없는 요청에 시달리게 되고, 결국 박기정은 결말을 모자의 재회 장면으로 끝을 낸다. 장대한 출발에 비해 너무 신파적인 결말이었다. 그래서 작가는 <도전자> 마지막권 후기를 통해 이런 결말이 맞는 것인지 뭔가 맘에 안 든다는 글을 쓴다.
성인들을 위한 만화 <레미제라블>과 신문 만평
<우야꼬> <바다와 소년>과 같은 아기자기한 서민 애환담 만화들도 좋지만 나는 외톨이에다 사납고 투박한 주인공 훈이를 내세워 그의 원념을 그리는 만화를 더 좋아 한다. 아마 박기정도 그랬으리라 생각된다. 이런 종류의 만화로 작가 자신도 대단히 애착을 가졌다 생각되는 것이 <장발장>이었다. 소년 한국일보사 명작만화 시리즈의 첫권으로 나온 <장발장>은 위고의 소설을 소년들이 읽기 좋게 각색한 만화였다. 소년들이 읽기 좋게라 해서 무시해서는 안된다. 훈이가 늙어 백발이 되어 연기한 장발장은 원념에도 불구하고 연민으로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훌륭한 판단을 내린 자이다. 쟈베르의 의심에도 불구하고 마차에 깔린 노인을 구해내는 장면, 굶고 학대받는 여주인공 고제트가 언 손을 부비며 물을 길어 여관으로 향할 때 장발장이 나타나 고제트의 언 손을 잡아주는 장면은 울컥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만화의 라스트. 고제트를 사랑하는 청년 마리우스를 절대 인정하지 않다가 결국 고제트가 영원히 자신의 품에 있기를 원하는 것은 잘못된 욕망이었다고 개심을 하여 폭동과 혁명의 피비린내나는 현장으로 뛰어들어 마리우스를 업고서 파리의 지하수로를 묵묵히 고개를 숙이고 걸어가는 장면은 박기정이 그린 최고의 장면이었다고 생각된다. 박기정은 소년 만화 <장발장>에 그치지 않고, 위고의 원작을 만화로 옮긴다는 야망을 품고 작업을 시작한다. 어린이 회관 앞에서 만화를 화형시키던 시대에 만화를 그렸던 작가였으니 만화는 불량식품과 더불어 어린이들을 오염시키는 병균이 아니라는 것을 당당히 작품으로 밝히고 싶었을 것이다. 더구나 위고의 <레미제라블>에 단단히 매혹되었으니 그는 거칠 것이 없었을 것이다. 1970년대 중반 박기정은 만화 <레미제라블>을 완성한다. 어른들도 읽을 수 있는 명작 만화가 박기정의 손에 의해 탄생한 것이다. 중학생이 되어 만홧가게에 갔다가 하얀색의 하드커버에 400여 페이지가 넘는 대작 <레미제라블>을 보고 감탄했다. 세상에. 종이도 갱지가 아닌 질이 좋은 켄트지였고, 인쇄 상태도 좋았다. 심혈을 기울여 위고의 원작을 촘촘히 옮긴 만화였다. 만화를 빌려온 나는 끝까지 다 읽지 못했다. 만화가 박기정의 의욕에 비해 만화는 너무나 읽기 힘들었다. 빽빽하게 새겨진 지문들이 읽는 사람을 지치게 만든 것이다. 그 비슷한 시기 가판대의 성인 만화들이 인기를 끌었고, 박기정 역시 가판대의 성인 만화에 진출했다. <풍운아>(이 제목이 아닐지도 모른다)였다. 재일조선인인 훈이가 일본인들의 온갖 차별 속에서 복서가 되는 내용이었다. 생각해보면 10여년 전에 그린 <도전자>의 성인판이었던 셈. 그런데 재미가 없었다. 가끔씩 들어간 베드신도 그렇고, 반항아 훈이도 맥이 빠졌다. 박기정이 그린 성인 만화는 이상하게 재미없고, 뭔가 걸맞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었다. 왜 재미가 없었을까? 박기정의 만화는 소년들의 멜로드라마이다. 어른들도 좋아하는 소년 만화 작가였다. 주인공들의 질투, 짝사랑, 증오, 연민. 그 모든 감정들은 소년 만화 세계 안에서 완벽하게 제 기능을 발휘한다. 그런데 그 감정들이 성인들을 대상으로 한 만화로 옮겨오자 힘을 잃는다. 소년 주인공들의 감정들이 어른만화의 세계로 진입하는 순간, 삼류 신파극이 되어버린다. 그가 그린 성인 만화나 야심차게 성인들이 읽는 만화로 도전한 <레미제라블>이나 그가 1990년대 들어 신문에 연재한 정치 만평이나 모두 재미가 없었다. 그의 신문 만평들은 이 사람이 장발장을 통해 연민을 그렸던 작가가 맞나 하는 의심을 할 정도로 이상했다.
성인 만화를 잘 그리는 작가가 소년 만화를 못 그린다는 것은 아니고, 그 반대 역시 마찬가지. 하지만 어떤 만화가는 소년 만화의 세계 속에서 자신의 역량을 잘 발휘하는 경우가 있다. 성인 만화와 소년 만화의 세계는 다른 언어의 세계이다. 박기정은 소년 만화의 세계 속에서 풍부하게 감정을 표현한 작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