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기와 두께 모두 다른 소설 둘과 에세이 하나는 현재 여기를 살아내려는 의지를 서로 다른 방식으로 드러낸다. 경제 저널리스트와 뮤지션에서 돌연 소설가가 된 요 네스뵈의 <아들>, 20대 무명 코미디언에서 순식간에 대스타가 된 와카바야시 마사야스의 <사회인대학교 낯가림학과 졸업하기>, 가장 혼란스러운 일본을 가장 격렬한 심정으로 바라본 다자이 오사무의 <사양>. 나이도, 살아온 시공간도 다른 세 남자가 써내려간 생에 대한 결심. 8월 <씨네21>의 북엔즈에서 만나보자.
사실, 노르웨이의 스릴러 <아들>은 살아가려는 힘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평생을 저주했던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감옥을 나온 소니가 거대하고 악랄한 범죄 조직에 일당백으로 맞서는 모습은, 제 발로 죽음을 찾아가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저 불꽃을 향해 몸을 던져야 비로소 자신으로 사는 불나방처럼, 소니는 거칠 것 없이 복수의 대상에게 성큼성큼 다가간다. 경찰인 아버지가 범죄자라는 오명으로 목숨을 끊은 순간부터 삶을 송두리째 잃어버린 소니가 다시 아버지에 대한 진실을 파헤쳐가는 과정은 소니가 자기를 되찾아나가는 과정과 다름이 없다. 하여, 냉혹하게 악인의 목숨을 제거할수록 오히려 서서히 감정의 온도가 올라가는 건 당연한 반응이다. 배우 채닝 테이텀은 이 뜨거운 스릴러를 원작으로 한 영화 연출을 계획하고 있다고.
지는 해라는 뜻을 떠올린다면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집 <사양> 역시 삶에 동떨어진 것 같은 인상을 준다. 더군다나 그는 생애 내내 꾸준히 자살을 시도하다 기어코 서른아홉에 세상을 등진 남자다. 하지만 연대기순으로 <사양>에 모인 10개의 이야기를 천천히 더듬어보면, 보잘것없는 자신이 아닌 세상에서 나약하기 짝이 없는 여성의 몸을 빌려서나마 새 삶을 꿈꾸려 했던 청년 다자이 오사무를 만날 수 있다. 그리고 고결하고 강인한 성품을 품고 주변의 모진 풍파를 의연하게 감내하는 여자들을 상상한 장년 다자이 오사무를 마주할 수 있다. <향응 부인>을 끝으로 책을 덮으며, 목숨을 버리려던 때조차 애인의 품이 필요했던 심약한 남자보다 끝내 그를 굴복시킨 폭력적인 세상이 더 먼저 보인다면, 다자이 오사무에 대한 창비의 새로운 시선은 우직한 대안으로 자리잡게 될 것이다.
일본의 인기 코미디언 와카바야시 마사야스가 쓴 <사회인대학교 낯가림학과 졸업하기>는 셋 가운데 ‘그나마’ 가장 직접적인 화법으로 세상에 대한 의지를 드러내는 편이다. ‘돈이 있으면 두통도 고칠 수 있구나’ 하며 씁쓸해하다가도 호랑이 마스크를 쓴 채 우스꽝스러운 포즈로 사진을 찍어야 하는 자신의 위치에 대해 곱씹어 생각한다. 더 많은 물질을 좇아야 하는 어른의 간편한 자위는 아니다. 다른 가치관을 향한 그의 선회가 건강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와카바야시 마사야스가 “하지만, 그러나” 하고 현재를 끊임없이 의심하기 때문이다. 다만 자기와 세상 사이를 오가는 긴장에서 나타나는 ‘낯가림’의 일화들에 베테랑 코미디언의 만만찮은 유머가 곳곳에 흩어져 있다. 긴장보다는 가볍게 낄낄댈 수 있는 여유가 어울리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