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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고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아이
윤혜지 사진 최성열 2015-08-17

<협녀, 칼의 기억> 김고은

김고은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 시인의 흔들의자 위에서 한들한들 잠든 은교를 보는 순간 그 모습을 본 모두가 이 아이에게 지고 말리라는 것을 알았을 거다. <몬스터>(2014)의 복순이와 <차이나타운>(2014)의 일영은 어떤가. 누가 봐도 승패가 빤한 싸움에서 악바리 근성으로 기어이 절대자를 이겨먹고야 만다. <협녀, 칼의 기억>도 마찬가지다. 이병헌과 전도연이라는, 이름만으로도 눈앞이 아득해지는 것 같은 배우들 사이에서마저 김고은은 끝끝내 자기 자리를 지켜내지 않는가. 맹하고 순한 얼굴에 속아 금세 또 잊어버리겠지만, 김고은은 강하고 독한 배우다.

<협녀, 칼의 기억>의 홍이가 그렇다. 옳다고 믿기에 행하는 아이. 복수만을 바라보며 살아온 홍이는 복수를 하고자 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뒤집힌 후에도 기어코 상대를 베러 가는 아이다. 그 길이 옳다고 여겼으니까. 마음이 찢기는 고통까지 싹 무시하고 끝내 ‘그 사람’의 등에 칼을 꽂아넣는다. “처음의 홍이와 후반부의 홍이는 다른 사람이에요. 하지만 같은 길을 가죠. ‘이건 못하는 일이야, 안 될 것 같아, 어떻게 그럴 수 있어’ 하다가도 그 길을 결국엔 가고 말아요. 그런 강단이 있어요.” 갓난아기 시절, 등에 깊게 새겨진 칼의 기억은 그대로 홍이가 짊어져야 하는 운명이 되었다. 한번 죽어 사라졌지만 죽을 때가 아니기에 다른 사람이 되어 살아가는 ‘그들’처럼, 홍이도 죽었지만 살아야 한다. 순진한 어린아이는 가혹한 운명 앞에 다른 선택이 없다.

어려운 선배들 앞에서 기죽지 않았냐는 물음엔 “어딜 가나 막내가 가장 편한 위치”라며 손사래를 치고, 야외 촬영이 어땠냐는 물음엔 “더울 땐 더위 먹어 고생, 추울 땐 발이 얼어 고생했어요”라는 단순명쾌한 답을 내놓는다. “촬영장에서 시간 남을 때도 뜨개질을 했어요. 여성스러운 게 아니라 단순한 거죠. 아무 생각 없이 손만 놀리면 되니까요. 좋아하는 게임도 <캔디크러쉬>예요. (웃음)” ‘단순함’은 ‘배짱’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고생스럽기로 소문이 자자했던 <협녀, 칼의 기억>의 현장이 편했을 리 없다. “걸어서 무술 연습하러 가면 기어서 나올 정도”의, “매 회차 진짜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고통스러웠던” 현장이다. “그만큼 성취감도 대단했어요. 액션 신 하나를 찍으려고 3박4일, 4박5일을 견뎠어요. 그 신을 통과해냈을 때의 성취감은 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몰라요.” 평소에도 야외 스포츠를 즐기는 편이었지만 <협녀, 칼의 기억> 이후에 싹 끊었단다. “관절이 안 좋아졌어요. (웃음) 와이어 액션은 공중에서 하는 거라 지상 액션을 할 때보다 다섯배는 더 힘을 써야 된대요. 늘 몸에 힘을 주고 있어서 촬영 이후에도 일년 내내 근육통을 달고 다녔어요.”

<몬스터> <차이나타운> <협녀, 칼의 기억>까지 숨차게 뛰어온 탓에 “딱 지금 체력적인 한계를 느끼고 있다”고 말하지만 아직 김고은은 더 달려야 할 때다. 9월 중 드라마 <치즈 인 더 트랩> 촬영을 시작한다. 그에겐 첫 드라마 연기이기도 하거니와 동명의 인기 웹툰이 원작이라 기대가 큰 만큼 부담이 될 법도 하다. 그러고보니 <치즈 인 더 트랩>의 홍설도 ‘지지 않는’ 인물이다. 비범하나 순진한 캐릭터를 주로 연기해온 그가 지극히 현실적이고, 결코 순진하지만은 않은 대학생 홍설을 어떻게 보여줄지도 궁금하다. 촬영을 마친 두 영화 <성난 변호사>(감독 허종호)와 <계춘할망>(감독 창감독)은 현재 후반작업 중이다. <성난 변호사>에서 김고은은 자존심 강한 검사 진선미를 연기한다. <성난 변호사>는 의문의 살인사건을 두고 변호사와 검사가 의기투합한다는 내용의 법정 스릴러다. 그의 말대로라면 진선미는 “괴팍하고 유쾌한 캐릭터”라고. “사랑스러운 윤여정 선생님과 함께 연기한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했던” <계춘할망>에선 보다 “투박한 연기”를 보여줄 거란다. “표현보다는 흐름이 잘 느껴지도록” 말이다. 사고로 헤어졌다 13년 만에 다시 만난 손녀 혜지와 할머니의 일상을 그린 <계춘할망>은 실제로도 할머니에게 각별한 김고은에겐 더욱 마음이 쓰이는 영화다. 정작 도전하고 싶은 건 “현실적인 멜로드라마”다. “시나리오가 많이 들어올 것 같다고요? 들어오기만 기다리는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찾아나섰을 정도예요. (웃음)” 방점이 ‘현실’에 찍혔는지 ‘멜로’에 찍혔는지는 모르겠지만 <치즈 인 더 트랩>의 홍설로 그 로망에 조금 더 가까워졌음은 틀림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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