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속한 ‘마감인간’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여전히 마감에 쫓기며 산다. 좋은 의미로는 밥벌이가 (아직도) 끊기지 않았다는 뜻이지만, 마감 없는 삶이 과연 어땠는가 회상하며 잔뜩 긴장한 마음으로 모니터를 바라보는 자신이 가끔 처량하다.
푸념은 이 정도로 하고, 필자가 실제 마감 때 듣는 음악 얘기를 해볼까 한다. 여기에는 경험으로 터득한 몇 가지 기준이 있다. 먼저 ‘가사’가 들리지 않을 것. 기승전결을 알 수 있는 한국어 가사 노래들은 제외한다. 하도 많이 들어 귀에 익은 팝송들도 마찬가지로 뺀다. 그리고 처량하더라도 흥겨울 것. 늦은 장맛비가 내리고, 아직 써야 할 글이 태산일 때, 하지만 주말 기분만큼은 이어폰에서라도 느끼고 싶을 때는 재즈(Jazz)가 좋다.
세월을 담은 거장의 목소리 대신 손가락 마디의 움직임과 백 밴드의 연주와 수군대는 바(bar) 풍경이 느껴지는 라이브 음반이면 좋다. 매끈한 스튜디오 녹음보다 어느 정도 들리는 소음이 한층 더 집중하게 해주니까. 추천 음반은 빌 에반스 트리오의 《The Complete Village Vanguard Recordings, 1961》이다. 이름처럼 뉴욕 재즈 클럽 ‘빌리지 뱅가드’에서 1961년에 녹음된 공연 실황으로 세장의 CD 박스 세트가 2005년 발행되었다(올뮤직닷컴(AllMusic.com)에서 별 다섯개를 받은 건 덤이다).
특히 추천하는 것은 두 번째 디스크의 <이브닝 세트>(Evening Set)다. 무한 반복하여 듣고 있으면, 얼른 원고를 마치고 나가서 산책하거나 아니면 친한 친구와 시원한 맥주라도 들이켜고 싶어지는 동기 유발 곡들의 향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