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에 감독님들 연락처 정리한 파일 같은 것 있으시죠? 혹시 보내주실 수 있을까요?” 몇해 전 모 인터넷 매체 기자라는 분께서 사무실로 전화를 걸어와 문의한 내용이다. 그런 파일도 없을뿐더러 설령 있다 해도 어떻게 보내드릴 수 있겠냐고 반문했더니, “필요할 때마다 연락드려서 한명씩 물어보는 게 더 귀찮지 않겠어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순간적으로 ‘정말 그러네?’라고 0.1초간 감탄했던 기억이 있다. 그보다 더 몇해 전에는 <씨네21>에 ‘박중훈 스토리’를 연재하던 중 역시 모 인터넷 매체 기자와 언쟁을 벌인 적이 있다. 내용의 핵심과 무관하게 ‘박중훈이 욕설을 했다’는 식으로 자극적인 제목만 뽑아 따옴표도 제멋대로 달았고, 심지어 작성자가 쓰지 않은 표현까지 임의로 추가해서 기사를 작성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기자 또한 항의하는 내게 당당했다. 인용을 왜 마음대로 했냐, 최소한 그러면 안 되는 것 아니냐고 물었더니 “그 내용이 그 내용 아닌가요?”라고 퉁명스럽게 답하더니 통화 말미에는 “앞으로 <씨네21> 기사를 인용할 일은 없겠네요”라는 잔인한 절교 선언까지 덧붙였다.
이른바 ‘어뷰징’ 기사의 폐해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별다를 바 없는 내용의 기사들을 제목만 바꿔 무차별적으로 전송하는 행태를 말한다. 겉으로 드러나는 포털 검색과 조회 수 경쟁 속에 애초의 ‘진실’이란 없다. 아니 그리 거창하게 말할 필요도 없이 최소한의 팩트 확인조차 없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그들은 그저 제목이 자극적이면 자극적일수록 오히려 진실에 다가간다고 여기는 사람들이다. 최근에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진실을 다뤄서 충격을 준 기자도 있었다. 공교롭게도 이번 호에서 윤혜지 기자가 인터뷰한 유승옥을 향한 사심이 가득했던, 이른바 ‘기승전유승옥’ 기사였다. 진짜 다음과 같은 제목의 기사였다. 명왕성 접근 성공, 모델 유승옥, ‘너무 신기해요’ 또 10호 태풍 린파 발생, 유승옥… ‘모든 분들 피해 없었으면’. 그야말로 어뷰징의 신기원이었다.
<베테랑>에서 흥미로운 인물 중 하나는 광역수사대 총경(천호진)이었다. 서로 자기가 힘들게 형사 생활했다며 부상 부위를 드러내는 서도철(황정민)과 오 팀장(오달수) 앞에서 그 역시 머리카락을 헤집어 부상당해 텅 빈 ‘땜빵’을 들이밀며 ‘현장 출신’임을 드러낸다. 낙하산이 아니라 베테랑 중의 베테랑을 승진시켜줘서 류승완 감독에게 고마웠다. 아무튼 오 팀장과 서도철이 설득해도 ‘적당한 선에서 사건을 마무리짓자’며 난공불락처럼 보였던 그가 극적으로 변하게 되는 순간은, 막내 윤 형사(김시후)가 범죄자로부터 ‘칼침’을 맞았다는 것을 알고 나서다. “도대체 누가 우리 막내한테 칼침 놨어!”라며 사건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앞서 초반부에 서도철이 배 기사(정웅인) 추락사건에 분노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 중 하나도, 역시나 한 아이의 아버지인 그가 ‘아버지 배 기사가 아들이 보는 앞에서 맞았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이다. 총경과 서도철은 대단히 정의로운 사람도 아니고 적당한 선에서 유들유들 살아온 사람들이지만 적어도 마음속으로 그어둔 최소한의 선을 지키며 살아온 베테랑들이다. 누군가 그 선을 넘어서게 될 때 이른바 ‘꼭지’가 도는 것.
그렇게 경찰이든 기자든 우리 모두 저마다의 선을 지키고 살았으면 좋겠다. 영화 속 대사처럼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나. 류승완 감독의 말에 따르면, 그 대사는 강수연 신임 부산국제영화제 공동집행위원장이 사석에서 종종 하던 얘기에서 따왔다고 한다. 우리 영화인이 돈이 없지, 가오가 없어? 라는 얘기에 카리스마가 넘쳤단다. 이번 호 국내뉴스에서 바로 그 강수연 위원장을 볼 수 있다. 그 가오로 부산국제영화제를 이끌어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