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기자들 사이에서도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세모자 성폭행 사건의 진실-누가 그들을 폭로자로 만드나?’ 편이 화제였다. 세모자가 주장하길, 마치 이시이 데루오의 <포르노 시대극 망팔무사도>(1973)나 파솔리니의 <살로 소돔의 120일>(1976)을 연상시키는 사건 자체뿐만 아니라, 네티즌이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참사’라 부른 한 아저씨에게도 눈길이 갔다. 세모자가 이른바 ‘섹스촌’이라 명명한 한 마을에 제작진까지 동행했는데, 어머니 이씨와 아들 허모군은 한 마을 주민을 만나자마자 다짜고짜 “안녕하세요, 우리 아들 강간하셨죠?” “아저씨가 저 성폭행하셨잖아요?”라고 추궁하기 시작했다. 그 아저씨는 처음 보는 사람들이라며 황당해하다가 결국 경찰에 신고하기에 이르렀다. 말 그대로 지나가던 행인이 난생처음 만난 사람들 앞에서, 자신은 이들을 성폭행한 성범죄자가 아니라고 해명해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었다.
물론 진실은 알 수 없다. 프로그램을 본 시청자 대부분은 세모자의 ‘허언’과 ‘망상’처럼 보겠지만, 박찬욱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2002)에서 자신이 혁명적 무정부주의동맹 소속임을 주장하던 영미(배두나),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2003)에서 강만식 사장(백윤식)이 외계인이라 믿던 병구(신하균), 봉준호 감독의 <마더>(2009)에서 아들 도준(원빈)이 누명을 쓴 것이라 항변하던 엄마(김혜자), 류승완 감독의 <부당거래>(2010)에서 졸지에 조작된 범죄자를 지칭하는 ‘배우’로 몰리게 된 봉고차 운전자(우정국)의 경우처럼, 말마따나 세상 모든 사건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영미가 진짜 동맹 조직원이라고, 또 강 사장이 외계인이라고 감히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이렇게 엮어 쓰고 보니 친한 한국 감독들 사이에서 묘하게 발상의 우연성이 겹쳐지는 것도 흥미롭다.
아무튼 말하고 싶었던 것은, 영문도 모른 채 알아서 먼저 해명해야 하는 세상에 대한 한탄이다. 오랜만에 방송으로 만나 반가웠던 종이접기 김영만 아저씨가 외제 승용차를 타는 것에 대해 해명해야 했고, 기자가 ‘아니면 말고’ 식으로 툭 던진 표절 논란에 대해 혁오 또한 ‘표절한 적 없습니다’라고 말해야 했다. 단지 유명세를 치르는 통과의례라고 하기에는, 그 트집 잡기 트렌드가 과해도 너무 과한 것 같다. 자세히 알아보지도 않고 일단 트집부터 잡는 것이다. 어쩌면 자이언티에게도 노래 <양화대교>를 언급하며 과거 아버지가 양화대교에서 전화를 받았을 때, 승객을 태운 채 운전 중에 받은 것인지 아니면 안전하게 핸즈프리를 이용하여 통화한 것인지 해명하라고 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 아버지도 이제 TV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에 출연한 ‘공인’이니까.
처음에는 농담처럼 생각했다가 괜히 더 찾아봤다. 자이언티가 1989년생이고 가사에 나오는 것처럼 별사탕과 라면땅을 좋아했던 것으로 보아 미취학 아동 혹은 초등학생일 때 전화했던 것으로 보이니, 다행히(?) 운전 중 통화금지가 시행된 2001년 이전의 일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왜 이런 것까지 찾아봤는지 모르겠지만, 한편으로 크게 안심되는 이 이상한 기분은 뭘까. 닥치는 대로 사과를 요구하고 영문도 모른 채 해명해야 하는 세상이다 보니, 오히려 진짜 사과하고 용서를 구해야 할 인간들이 도드라져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이번호 특집으로 다룬 <베테랑>의 ‘공공의 적’ 조태오(유아인)를 보며 느낀 점이기도 하다. 또 <베테랑>에서 끝까지 자존감을 지키고 싶었던 트럭 드라이버 아버지(정웅인)와 <양화대교>의 택시 드라이버 아버지도 묘하게 겹쳐 보였다. 어쨌거나 <양화대교> 가사처럼 <베테랑>의 아버지도 아들에게 결국 같은 말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우리 제발 행복하자. 우리. 아프지 말고. 행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