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모 신문사 기자가 ‘이혐’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이혐? 우리 사회에 그런 문제 제기가 있었던가? 나는 당연히 이성(理性)혐오인 줄 알고, 근대성 운운했다가 그의 표정을 보고 당황했다. 그가 말한 ‘이혐’은 여성혐오 vs 남성혐오를 합친 이성(異性)혐오였던 것이다!
이럴 땐 어디서부터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일단, 혐(嫌)자에 이미 ‘계집 녀’가 들어가 있잖아요.” “노/사, 흑/백, 이성애/동성애처럼 남성과 여성은 대칭적인 개념이 아니에요. 남성혐오는 가능하지 않아요.” “여혐은 여성으로 상징되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이고요, 인류 문명의 전제는 남성 숭배(penis envy) 문화예요, 여아 낙태나 여성에 대한 폭력을 보세요.” 나도 모르게 ‘강의’를 하고 있었다.
근대 서구에서 페미니즘의 시작은 자유주의(“양성평등”)였다. 여성도 경제적 자립을, 참정권을, 성적 결정권을… 이것은 자유주의 페미니즘(liberal feminism)도 아니고 그냥 자유주의다. 자유주의 이념에 여성도 포함시키라는 요구였다. ‘남혐’이라는 용어가 돌아다니는 한국 사회에는 아직 자유주의도, 자유주의 페미니즘도, 자유주의 비판도 가능하지 않다.
나는 20여년 넘게 여성주의 주변에 있었다. 항상 듣는 말이 있다. “남학생 휴게실은 없잖아요?”, “맞는 남자도 있어요”, “페미니즘은 역차별이에요”(남성), “왜 남성을 비판하지 않는 거죠”(여성). 나는 거의 매일 설명했고 비판했다. 가능하지는 않겠지만, 남은 인생은 좀 ‘말이 되는 언어’와 씨름하고 싶다.
다른 식의 접근이 필요하다. ‘무뇌아 페미니즘’ 소동이 있을 때, 내 생각은 아직도 뇌 중심의 사고를 하고 있다니, 였다. 웬 ‘뇌 페티시즘’? 뇌(mind)와 몸(body)을 분리했을 때만 가능한 일이다. 인간은 무뇌로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남성은 ‘개인’의 지위에서 ‘전체’ 여성의 몸을 규정하는 권력을 갖고 있다. “여성은 뇌가 없다, 여성은 성욕이 없는 여성과 과잉인 여성으로 나뉜다, 여성은 애를 낳는다(20% 이상의 여성이 불임이고, 출산은 선택이다).” 지구에 사는 35억명 여성 몸의 다양성을 맘대로 정리하는 ‘망상남’들이 한둘이 아니다.
최근의 ‘남혐’ 현상은 계급 문제가 성별 이슈로 둔갑한 것이다. 여성혐오(비하, 무시, 차별)는 사회가 공유하는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다. ‘남성혐오’는 다르다. 여성 입장에서는 당신들도 겪어봐라, 라는 일시적 거울 전략(mirroring)이기도 하고, 일부 남성들의 퇴행적 호소이기도 하다(“여자들이 나를 미워해요”). 신자유주의 체제의 대표적 현상 중 하나는 성별보다 계급 격차의 심화다. 계급 갈등을 ‘여성 문제’로 만들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