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을 포함해 출판물의 저자이거나 편집자인 사람들은 책 표지에 대해 자주 투덜거린다. 출판 디자인, 그중에도 표지 디자인을 하는 사람들의 변은 왕왕 “책이 이렇다”다. 자신의 책 표지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 불편한 마음이 드는 이유도 거기 있을 것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 이 표지는 혹시 내 책이 이렇게 읽혔다는 뜻은 아닌가? 충분한 금전적 보상이 주어지지 않고 일의 양이 많고 일정이 급박한 한국 출판 환경이 어긋남의 주범인 경우가 많은데도.
“표지 디자이너의 역할은 거의 문자 그대로 독서라는 본질적 행동을 하는 일이다. 즉, 책의 껍질 속을 꿰뚫어보고 그 책의 토대를 정확히 찾아 보여주는 일이며, (…) 표지 디자이너는 예언자들이 나뭇잎이나 내장을 읽어내는 식으로 책을 읽는다.” 뮤지션이자 북디자이너인 피터 멘델선드가 만든 책 표지를 모은 <커버>의 소개글을 쓴 톰 매카시는 책의 무의식을 측정하는 일이 바로 피터 멘델선드의 재능이라고 설명한다. 피아니스트로 음악원 대학원 과정까지 마친 멘델선드가 북디자이너가 된 계기는 전혀 신비롭지 않다. 첫딸이 태어났는데 피아노 연습만 하면 잠에서 깼다. 연습이 부족해졌고, 돈이 없는데 보험도 없었다. 그는 아내의 제안으로 디자이너로서 필요한 것을 독학했다. 어머니를 통해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이 북디자이너라고 듣고 밑져야 본전이라는 식으로 연락해봤는데 채용이 되었다. 그 회사가 크노프 출판사였다(역경을 딛고 승리를 거두는 이야기를 기대한 사람에게는 약간 허무한 농담처럼 느껴지는 대목이기도). 그리고 멘델선드는 출판사 입사 2주 뒤 혼자 디자인할 타이틀을 받았는데 그 책이 무려 에드워드 O. 윌슨의 <생명의 미래>였다. 저자가 직접 사용해달라 요청한 그림이 있었다. 하지만 그 그림을 그대로 표지 전면에 내세울 수는 없었다. 크고 화려하고 강렬하고 한 글자도 더 앉힐 수 없는 거대한 꽃과 거북이, 붕어의 그림이었으니까. 멘델선드는 근사한 해결책을 찾았다. 책 표지를 하나 더 만들어 입힌 뒤 구멍을 뚫는 것. 그리고 11년이 흘렀다.
책의 영혼이 본문의 글자와 구두점, 행간에 있다고 믿는 이에게 표지는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인 껍질에 불과할지도 모르지만, 내게는 그렇지 않다. 낯선 책의 표지가 마음에 들어 산 적이 있음은 물론이고, 이미 완독한 책을 새 표지가 마음에 들어 몇권이고 산 일도 있다. 그리고 나는 <커버>를 보며 그렇게 산 몇몇 책들의 표지 디자인이 멘델선드의 것임을 알았다. 훌리오 코르타사르의 <사방치기>,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연인>. 그는 스티그 라르손의 ‘밀레니엄’ 시리즈도 디자인했는데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의 다양한 시안들도 볼 수 있다. 표지마다 관련 글 인용, 뒷이야기, 장르별 디자인의 특이점 등을 곁들여 읽을 수 있게 구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