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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 추천 도서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
김보연 사진 오계옥 2015-07-21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 가와무라 겐키 지음 / 이영미 옮김 / 오퍼스프레스 펴냄

<전차남> <고백> <늑대아이> 등을 제작한 프로듀서인 가와무라 겐키의 소설 데뷔작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은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시침 뚝 떼고 들려준다. 이 제목을 처음 본 독자는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궁금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심오한 비유라고 여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소설은 진지하게 이 세상의 고양이를 모두 없애려고 한다. 어떻게 그게 가능한지 묻는 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러니 이 소설을 마음 편히 읽기 위해서는 일단 그 거짓말 같은 내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허들을 넘어야 한다.

내용을 좀더 자세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혼자 살아가는 삼십대의 주인공은 어느 날 의사에게 충격적인 말을 듣는다. 뇌의 종양 때문에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주인공은 그렇구나, 라며 터덜터덜 돌아오지만 정말 놀랄 만한 일은 지금부터 벌어진다. 악마가 불쑥 등장해 세상의 사물을 한 종류씩 없애는 걸 대가로 수명을 하루씩 연장해주겠다고 제안한 것이다(그리고 이를 거절하면 당장 내일 죽는다고 친절히 덧붙인다). 주인공은 손해볼 것 없다고 생각해 악마와 계약을 체결하지만 이것저것을 없애며 살날을 늘릴수록 이 계약이 그렇게 마음 편한 일이 아님을 알아차린다.

들을수록 이상한 이 이야기는, 그러나 갈수록 의외의 감정적 흡입력을 발휘한다. 무엇보다 악마가 능글맞게 제안하는 제거 대상의 목록이 꽤 흥미롭다. 전화? 망설임 없이 없앨 수 있다. 영화? 좀 허전하기는 하겠지만 살아가는 데 별 문제는 없다. 시계? 없어지면 은근히 편할 것 같다. 하지만 고양이는 왠지 좀 곤란한다. 주인공이 키우는 고양이 ‘양배추’가 죽은 어머니와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거의 유일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한 마리 고양이와 자신의 수명 하루치를 수평저울에 올려놓고 비교한다는 것. 당연히 추는 후자쪽으로 기울 것 같지만 작가는 이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의 감성과 글솜씨를 120% 발휘한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추억을 없애면서까지 이어가는 삶이 과연 가치 있을까? 그리고 이 질문은 꽤 날카롭게 날아와 꽂힌다. 주인공의 결정이 무엇이었는지 밝힐 수는 없지만 그 고민의 과정과 이후의 행동은 마치 잘 쓰인 동화처럼 우리 삶의 문제를 단순화해 객관화한다. 과연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 것일까. 이 책은 평소라면 개똥철학이라며 쳐다보지도 않을 질문과 차분히 마주하게 한다. 그러니 좀 허무맹랑하면 어떤가.

인간이 고양이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고양이가 사라진 세상에서는 쥐가 천적을 잃는다. 개 천하가 도래한다. 헬로키티도 도라에몽도 <이웃집 토토로>에 나오는 고양이 버스도 사라져버린다. 나쓰메 소세키의 책 제목은 ‘나는 개로소이다’로 바뀌고, ‘오늘의 네코무라 씨’ 만화는 ‘오늘의 이누야마 씨’로 부득이 변경된다. 우리 주위에는 생각했던 것보다 고양이가 많다.(166쪽)

결국 고양이는 자기보다 먼저 죽고, 그 죽음이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을 야기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슬픔은 불가피한 것이며, 언젠가는 반드시 찾아온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런데도 인간은 고양이를 키우는 것이다. (…) 인간은 자기는 알 길 없는 자신의 모습, 자신의 미래, 자신의 죽음을 알기 위해 고양이와 함께 지내는 건 아닐까? 어머니의 말이 옳다. 고양이가 인간을 필요로 하는 게 아니다. 인간이 고양이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167∼1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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