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명의 작가가 쓴 다섯권의 소설책을 읽었다. 그리고 마지막 책까지 다 읽은 후에야 이 이야기들이 모두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그리고 있음을 알았다. 부러워 보이는 관계도 있고, 쉽게 이해하기 힘든 관계도 있었지만 그만큼 인간을 바라보는 작가들의 시각이 다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 소개하는 책들을 통해 관계에 대한 이상적인 이미지를 찾는 건 물론 불가능하겠지만 선택 가능한 유의미한 보기로 삼을 수는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아래는 정답이 없는 오지선다이다. 자유롭게 골라보시길.
1.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에는 아버지와 심하게 싸운 아들이 등장한다.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도 아버지를 찾아가지 않을 정도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건 아들이 아버지의 사정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아버지의 입장은 이해하지만 나에게도 나만의 입장이 있어. 그러니 여기서 이만’의 태도. 그렇기에 이 소설은 동화 같은 내용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현실을 냉정히 반영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어떤 입장과 또 다른 입장 사이의 넘을 수 없는 벽. 과연 이 책의 주인공은 그 벽을 넘는 시도를 할까.
2. <시작하는 연인들은 투케로 간다>는 개인적으로 가장 이해하기 힘든 소설이었다. 이 소설의 주인공들은 다들 미친 듯한 열정으로 사랑에 빠진다. 가족까지 내팽개칠 정도다. 그런데 그렇게 어렵게 사랑을 이루었다면 행복해져야 할 텐데 꼭 그런 것도 아니다. 이들은 사랑이 이루어지자마자 재빨리 그 사랑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어쩌면 이들은, 그리고 작가는 그 불안한 열정 자체를 사랑이라 부르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시 해보았다.
3. <트렁크>는 ‘계약 결혼’을 소재로 삼아 ‘결혼 출장’ 중인 여자의 삶을 그린다. 계약 결혼이라 하기에 막연히 삭막한 일상의 묘사만 가득 나올 거라 예상했는데, 작가는 의외로 이 계약 결혼에 낭만적인 분위기를 슬쩍 밀어넣는다. 어떤 상황에서든 한 인간의 결핍과 다른 인간의 결핍은 서로를 감지하는 것일까. 김려령 작가에 대한 영화계의 애정을 고려해볼 때 어쩌면 계약 결혼을 소재로 한 멜로드라마를 조만간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4. <마사&겐>은 가장 이상적인 관계가 등장하는, 하지만 동시에 가장 비현실적인 관계를 그리는 소설이다. 이 소설의 인물들은 다들 서로를 걱정하고 아끼고 챙긴다. 이들의 그런 따뜻한 관계들을 보며 대리 만족을 했지만, 문득 실제 우리 현실은 그렇지 않음을 떠올리며 도리어 마음이 차갑게 식는 이상한 경험을 하기도 하였다.
5. <셜록 홈즈: 모리어티의 죽음>은 자연스럽게 셜록 홈스와 존 왓슨을 떠올리게 만든다. 둘의 관계에 대해서는 사실 별다른 설명이 필요 없을 것 같다. 두 사람이 서로를 얼마나 걱정하고 아끼고 챙기는지는 모두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정답이 없다고 말했지만 어쩌면 이 두 사람이야말로 이상적인 인간관계의 좋은 예 같다는 생각도 살짝 든다. 물론 생명의 위협은 일상적으로 느껴야 하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