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물 때에 일봉이가 남한산성으로부터 나오면서 영감의 편지를 가져왔다. 그 편지에 기별하시기를 일이 급하게 되었으니 짐붙이는 생각지도 말고 밤낮을 가리지 말고 청풍으로 가라고 하셨다.” 때는 1636년 병자년 12월16일. 인조 임금을 호종해 남한산성에 들어간 남편 남이웅의 전갈은 빨리 피난을 가라는 내용이었다. 병자호란이었다.
<병자일기>는 병자호란이 시작된 때로부터 4년여간 쓰인 일기다. 인조 때 좌의정을 지낸 남이웅의 부인 남평 조씨가 썼는데, 최근 신주 뒷면에 새겨진 실명이 발견된 것에 따르면 그녀의 이름은 조애중이었다. 그녀는 17살에 남이웅과 혼인해 56년을 살았고 남편보다 3년 먼저 72살로 병사했다. 자녀는 모두 일찍 죽었고 병자년 그녀의 나이는 63살이 된 참이다. 남편은 임금(인조) 곁에 있거나 세자(소현) 곁에 있어야 했고, 식솔을 이끌고 피난을 떠나는 것은 그녀의 몫이었다. 그 피난길은 서산, 당진, 여산, 충주 등지로 이어진다. 병자호란은 길지 않았지만 조선은 오래 혼란했다. 일기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주로 종 아니면 손님인데, 조선 사대부 여인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들을 수 있다. 예를 들면 이렇다. 정신없는 와중에 남편의 측실이 아이를 낳을 기미가 있다는 기별을 받고 찾아간다. “갓난아이를 보니 얼굴이 영감을 닮은 곳이 많다. 영감께서 저리로 가서 쓸쓸한 때에 아이를 보니 측은한 생각이 든다.” 그녀가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서는 방문을 받아야 한다. 그래서 일기는 날씨로 시작해 누군가의 방문 혹은 심부름이나 일을 보낸 종에 대해 기록하는 경우가 많다. 방문은 꿈에서 찾아오는 이들을 포함한다.
꿈에서 돌아가신 어르신들이 찾아오고, 남편의 얼굴을 본다.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을 속 시원히 알 길이 없으니 꿈을 적고 풀이하는 것이 중요한 일과다. 꿈에서 만나지지 않아 애를 끓이는 이도 있으니, 스물다섯에 세상을 떠난 둘째 아들이다. 아들의 제사를 지내며 그녀는 왜 꿈에라도 찾아오지 않느냐 원망한다. “아이고, 꿈에나 나타나 보이려므나, 타이르고 눈물을 흘리며 지내나 꿈에도 한번 분명히 보이지를 않으니 제 잘못이로다. 저인들 정령이 있으면 늙은 어미를 생각하지 않으랴마는 유명이 달라서 그런가 하여 더욱 설워한다.” 남편이 귀국하고 나서는 조정의 이야기를 적어놓은 부분도 많아, 후반부에서는 외교와 국내 정치에 대해 알 수 있다.
책 말미에는 처음 쓰인 방식대로의 한글 표기로 일기 원문, 가계도, 등장인물 설명이 있다. 이름이 아니라 아버지의 성을 따라 기록된 존재. 남편이 죽으면 따라 죽어야 했고, 아들을 낳지 못하면 후실을 들일 것을 권해야 했던 여자들. 표현의 생생함에 감탄할 때마다 한숨이 오히려 커지는 것은 어째서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