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주간 나의 독서를 위해 초빙한 작가는 두 미국인이다. 제임스 설터와 리처드 브라우티건으로, 설터에 대해서는 다음주에 쓰기로 하고 오늘은 브라우티건의 <완벽한 캘리포니아의 하루>에 대해 말하고 싶다.
단편집인 이 책의 원제는 <Revenge of the Lawn>으로, 바로 첫 번째 단편의 제목에서 딴 것이다. <잔디밭의 복수>. 8쪽밖에 되지 않는 <잔디밭의 복수>는 이렇게 시작한다. “우리 할머니는 미국의 과거라는 풍랑 속에서 등대처럼 빛나는 사람이었다.” 여기서 잠깐 당부의 말을 해야 할 것 같다. 문장 하나를 읽고 상상하고 그다음 문장을 음미하며 읽을 것. “할머니는 워싱턴주의 조그만 마을에 사는 밀주업자였다.” 아아, 미국의 과거라는 풍랑. 아아, 등대처럼 빛나는 사람. 이 할머니에게는 잭이라는 동거인이 있었고, 그들은 30년이나 같이 살았다. 잭은 화자인 ‘나’의 친할아버지가 아니었다. 물건을 팔러 왔다가 일주일 후 배달을 온 뒤로 눌러앉아 그로부터 30년이 흘렀다. “그 후 플로리다는 그 없이 지내야 했다.” 잭이 꽤 중요한 사람처럼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글을 계속 읽다보면 플로리다가 그의 부재를 반가워했을지도 모른다는 데 생각이 미친다. 잭은 앞마당 잔디밭이 자기를 싫어한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잔디밭은 말년을 정신병원에서 보낸 할아버지의 소유였다. 할아버지는 잔디밭이 예지력을 주었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그는 1911년에 예측하기를 제1차 세계대전이 1914년 6월28일 일어날 거라고 했었다. 그 예언이 이루어지기 1년 전, 불행히도 정신병원에 가게 되었고, 그의 시간은 1872년 5월3일에 멈춰버렸다. 1832년 5월3일, 할아버지는 소년이었고 비가 막 오려는 흐린 날씨에 엄마가 초콜릿 케이크를 굽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 1930년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초콜릿 케이크가 다 구워지기까지 17년이나 걸린 셈이다.
미안하다. 줄거리를 파악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따라왔다면 실망했을 텐데, 어떤 ‘이야기’라고 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피터르 브뤼헐의 <네덜란드 속담> 같은 그림을 연상시킨다. 화풍은 다르지만 인상은 비슷하다. 눈길을 더 끄는 이는 있어도 주인공은 없고, 시선이 움직이는 대로 상상의 나래는 무한히 펼쳐진다. 자연도 하나의 등장인물이 된다.
이야기 대신 불쑥 등장하는 이미지를 따라 길을 잃어가며 더듬더듬 책장을 넘기는 일. 리처드 브라우티건을 읽는 재미다. 모든 것은 문장을 통해 ‘보여지고’, 충실한 독자는 거기에 넋을 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