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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회 <씨네21> 영화평론상: 어떻게 소년은 영화가 되는가(작품비평 전문)

<보이후드>

<보이후드>는 소년 메이슨(엘라 콜트레인)의 성장기다. 메이슨의 유년기부터 시작해 막 성인이 되기까지의 시간이 담긴다. 비범한 것은 <보이후드>가 메이슨의 성장기이자 배우 엘라 콜트레인의 성장기라는 점이다. 감독은 12년간 아직은 무명의 어린 배우, 엘라 콜트레인과 꾸준히 작업했다. <보이후드>에 대한 경탄은 감독과 배우가 조용히 공들인 서사 바깥의 시간에 맞춰진다. 이러한 경탄은 그 감독이 리처드 링클레이터라는 점을 염두에 둘 때 새삼스럽다. 링클레이터는 이미 배우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는 작업 방식으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링클레이터는 이미 ‘비포 시리즈’를 통해 배우들이 실제 겪는 물리적인 시간의 흐름을 서사에 새겨 넣은 적이 있다. <보이후드>는 비포 시리즈에서 사용한 방식의 연장선에 있다. 단, 일정한 시간의 규칙을 따랐으며, 관계를 맺은 배우가 단 한 번도 대중에게 알려진 적이 없는 배우였으며, 오랜 해에 걸친 촬영분을 한꺼번에 공개했다.

허구의 인물인 메이슨과 배우 엘라 콜트레인의 성장은 영화의 상영과 동시에 일어나며 상영이 끝난 뒤 남는 것은 한 편의 다큐멘터리다. 픽션과 메이킹 필름을 동시에 보는 듯한 이상한 느낌이 <보이후드>가 작동하는 방식이다. 이것은 장점인 동시에 단점이기도 한데, 영화 외적인 것이 영화 내적인 것을 초과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보이후드>에 대한 상찬의 대부분은 그것이 담고 있는 내용보다 카메라를 든 감독이 주인공 혹은 대상과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냈는가에 대한 언급이 더 많다는 사실은 이를 잘 보여준다. 그러므로 <보이후드>의 내적 서사와 외적 서사의 관계를 좀 더 면밀히 살펴보아야 한다.

논의의 초점을 영화가 제작된 기간이 12년이라는 사실로부터, <보이후드>가 12년이라는 시간을 어떤 방식으로 썼는가로 옮겨보자. 링클레이터는 12년 동안 매년 15분 분량을 촬영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15분이라는 시간은 1년에 해당하는 365일을 프레임 수인 24프레임으로 나눈 숫자다. 그러므로 <보이후드>의 15분이라는 시간은 축약된 1년이다. 이런 제작 방식은 매일 자신의 얼굴 사진을 찍어 모아 영상화한 사진적 다큐멘터리에서는 흔한 작업 방식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유지숙의 <10년의 셀프초상>(2001)의 작업 방식은 <보이후드>의 방식과 거의 정확히 일치한다. <10년의 셀프초상>은 하루를 한 프레임으로 계산해 매일 찍은 자신의 얼굴 사진이 연속으로 흐르게 만든 작품이다. 다큐멘터리에서 강조되는 것은 시간의 흐름이다. 이 흐름 속에서 그 어떤 얼굴도 중심이 되지 않음은 물론이다.

<보이후드>에서 중심 없는 얼굴에 해당하는 것은 중심 없는 사건이다. <보이후드>는 엄격한 극적 장치를 마련하는 데 둔감하다. 영화 속에는 많은 사건이 일어나지만, 관객에게 그것은 ‘사건 없음’으로 읽힌다. 결정적인 사건이 있을 때마다 메이슨은 그곳으로부터 빠져나오며, 사건은 생략되기 일쑤다. 이를테면 메이슨과 가족이 새아버지의 알코올 중독증에 시달리는 장면은 꽤 중요하게 등장하지만, 메이슨이 공간을 빠져나오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주인공이 성장한 이후에 친구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하는 장면 역시 그 이후를 생략하면서 영화 내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지 못한다. 주인공이 거치는 사건 중 그 어느 것도 영화에서 결코 중심적인 위치에 서지 못한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어딘가로 부단히 이동하는 메이슨과 가족들의 이동의 역사다.

<보이후드>에서는 이사하는 장면이 유독 많이 등장한다. 아버지와 이혼 후 홀어머니 밑에서 살던 집을 떠나 이사하는 것으로 장면은 시작된다. 메이슨과 어울려 놀던 친구가 떠나는 친구를 배웅하는 장면도 그것이 줄 수 있는 감동의 잠재력을 뭉갠 채 서둘러 사라진다. 이러한 이별은 부모의 재혼으로 형제처럼 지내던 아이들을 폭력적인 아버지의 손아귀에 두고 빠져나오는 장면과 선생님께 들킬 위험을 무릅쓰고 머리를 짧게 깎인 메이슨에게 ‘멋지다’는 쪽지를 보내 준 소녀와 별다른 관계의 진전을 보이지 않고 생략되는 장면 등에서 반복된다. 머무는 것이 아닌 떠나야 하는 것으로 공간을 그리면서 감독은 자신이 하려는 것이 단순히 주인공을 오래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잠깐씩 자주라는 감독의 모토는 모든 사건이 의미가 있지만, 어떤 사건도 메이슨에게 결정적으로 기능할 수 없게끔 만든다. 인물을 중심에 놓는다는 것은 다큐멘터리에서 간과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다큐멘터리에서 감독이 대상과 관계를 맺을 때는 일단 어떤 사건이나 주제가 중심이 된다. 다큐멘터리에서 진정성이 중시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사건 중심 다큐멘터리에서 감독은 단지 사건을 잘 보여주기 위해 대상을 이용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 그래서 다큐멘터리에서는 내가 그들과 어떤 관계를 맺었고, 당사자가 어떻게 보는가 하는 것은 여전히 중요한 문제다. 물론 사건이 아닌, 인물이 중심이 되는 다큐멘터리도 있다. 그런데 그 인물은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이 될 만하다고 판단된 인물이다. 특별하지 않은 사람이 다큐멘터리에 등장 가능한 경우는 감독이 본인이나 자신의 가족을 다룬 자전적 다큐멘터리에 한정된다.

<보이후드>는 사건보다 인물이 중심이 되며, 그 인물은 전혀 특별할 것이 없는 보통 사람이다. 그런 의미에서 다큐멘터리로 친다면 범인을 다룬 자전적 다큐멘터리와 유사하다. <보이후드>를 자전적 다큐멘터리로 놓고 봤을 때 주목되는 것은 영화를 매개로 한 에단 호크와 엘라 콜트레인의 조합이다.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사단이며, 비포 시리즈의 주인공인 그가 엘라 콜스테인의 아버지로 등장하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비포 시리즈가 <보이 후드>라는 시리즈를 내포한 영화를 낳았다. 또한, 비포 시리즈의 에단 호크가 <보이 후드>의 메이슨을 낳았다. 영화 바깥의 상황은 그대로 영화 내부에 포함되어 있다. 에단 호크가 연기한 메이슨 시니어는 메이슨의 이혼한 아버지다. 아이들을 가끔 찾아가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메이슨 시니어의 입장은 1년에 한 번꼴로 촬영한 영화 제작의 측면과 닮았다. 엘라 콜트레인이라는 배우에 대해 속속들이 다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여전히 함께 한다. 그것은 깊이가 결여된 만남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느슨하게 축적된 시간들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 만남의 깊이를 증명한다.

영화를 영화이게 하는 것은 그것이 특수한 사건을 찍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찍고 있기에 그것이 사건이 된다. 이를 증명한 것은 <보이후드>가 극영화로서 해낸 이례적인 성취다. <보이후드>에서는 사람이 사건이 된다. 영화 자체가 하나의 사건이 된다. 인물과 영화가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합쳐진다. <보이후드>가 영화의 내적인 것이 아닌, 외적인 것에 의해 평가되는 영화라는 사실은 잘못된 것이다. <보이후드>는 내부와 외부로 나눌 수 없는 영화다. 내부가 곧 외부이며, 외부가 곧 내부이기 때문이다.